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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15

‘그럼에도’ 인생은 선물, <아트바젤 마이애미: OVR> 리뷰



정말 우리는 온전한 OVR(Online Viewing Room) 시대를 맞이하게 된 것일까? 갤러리, 미술관, 그리고 글로벌 아트 페어의 OVR 수준이 날로 발전하는 걸 보면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지난 12월 초 열린 아트바젤 마이애미비치는 이것을 더욱 확실히 증명해냈다.


*격상된 사회적 거리 두기로 인해 국내 전시 소개가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따라서 이달은 세계 최고의 아트 페어 가운데 하나인 <아트바젤 마이애미>의 소식으로 이를 대신하고자 한다.-편집자 주


맞다. 이 정도면 미술계에서도 본격적인 OVR 시대가 도래했다고 봐도 무방할 듯하다. 코로나 19가 시작된 올해, ‘아트바젤 홍콩’은 개최 시기를 미루다 결국 6월 OVR 형식으로 오픈하며 그 시작을 알렸다. 3개월 뒤인 9월엔 스위스 바젤에서 열린 ‘아트바젤’이, 그리고 12월 4~6일(현지 시간 기준)까지 ‘아트바젤 마이애미비치’가 디지털 가상 현실 속에서 관객과 만났다. 가히 세계 최고의 아트페어라 할 수 있는 ‘아트바젤’ 주최 측은 올해 세 개의 행사를 온라인뷰잉이라는 새로운 형식으로 무사히 치러내며 자칫 ‘잃어버린 2020년’이 될 뻔했던 올해의 미술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아트바젤은 1970년 스위스 바젤에서 처음 시작된 아트페어다. 당시 화이트 월 부스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시장 좌판에 가까운 모습으로 시작했지만 유럽 중심의 갤러리와 아트 컬렉터들을 바탕으로 점차 규모를 키워나갔다.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이해 아트바젤은 두 번째 장소를 물색했다. 유럽갤러리 중심의 아트바젤에서 벗어나 북남미 아트마켓을 선점하고 싶었기 때문. 장소를 고민하던 아트바젤은 사계절 화창한 날씨, 북남미 문화가 혼재한 다양성, 탄탄한 미술 인프라 갖춘 미국 남부의 마이애미를 낙점했다. 아트바젤 마이애미비치는 새로운 밀레니엄의 시작과 함께 런칭될 계획이었으나 2001년 9.11 테러 여파로 이듬해인 2002년 문을 열었다. 아트 바젤이 유럽 갤러리를, 2013년 런칭한 아트바젤 홍콩이 아시아 갤러리를 포용한 것 같이 아트바젤 마이애미비치는 북미와 남미 갤러리, 아프리카 갤러리를 바탕으로 마이애미의 경쾌하고 화려한 특성을 살리며 글로벌 아트페어로 자리매김했다.




2019년 아트바젤 마이애미 모습. 올해는 마이애미의 청명한 하늘과 전세계에서 몰려든 미술 애호가와 아트 컬렉터, 파티 피플을 구경하지 못해 아쉬움이 크다.

매년 12월 미국 마이애미 비치에서 개최해온 ‘아트바젤 마이애미비치’도 코로나 여파를 피해가진 못했다. 아트바젤은 “플로리다 남부 지역을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장기화된 코로나19 사태와 해외여행 제약, 자가격리 지침 등으로 올해 아트바젤 마이애미비치 오프라인 행사도 취소했다”고 밝혔다. 대신 이들이 준비한 건 ‘OVR: Miami Beach’라는 이름의 온라인 뷰잉. 기존 오프라인 행사에 참가 승인을 받은 30개국 255개의 글로벌 갤러리들은 3일간 열린 온라인 행사에서도 질 높은 작품과 다채로운 행사로 전 세계 아트애호가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번 아트바젤 마이애미비치의 특징 중 하나는 데이비드 즈위너, 에스터시퍼, 리먼머핀, 타데우스로팍, 하우저 앤 워스 등 초대형 갤러리들이 온라인뷰잉룸을 위해 다양한 시도를 했다는 것이다. 베를린의 메이저 갤러리 에스터시퍼는 이번 아트바젤 마이애미비치 OVR을 위해 부스 모형을 직접 제작해 3차원적인 공간 뷰잉 서비스를 제공하며 관계자들의 큰 호응을 끌어냈다. 에스터시퍼는 “디지털 박람회가 보편화되고 있는 시점에서, 우리는 실제 부스 모델을 만드는 것을 포함한 좀 더 전통적인 방법론을 가지고 OVR: Miami Beach 2020에 접근했다”라고 말했다.




에스터시퍼 갤러리의 3차원 공간 뷰잉 영상. 온라인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관람객 시선의 경험을 제공한 것으로 반응이 좋았다. 실제로 이러한 가상 공간 뷰잉을 통해 마틴 보이즈, 사이먼 후지와라, 필리프 파레노의 작품 판매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밝혔다.

리만머핀은 12월 1일부터 2021년 2월 28일까지 마이애미 팜비치에 임시로 전시장을 열어 온라인뷰잉이 해결할 수 없는 관객과의 교감을 시도해 눈길을 끌었다. 리만머핀은 "전염병 발병 이후 뉴욕, 홍콩, 서울, 런던에 위치한 물리적 위치의 경계를 넓힐 수 있는 창의적인 방법을 모색하다 계절에 맞게 전시장을 임시로 오픈하는 방법을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리먼머핀 갤러리는 아트바젤 마이애미비치가 시작된 12월, 팜비치에 임시 갤러리를 열어 고객 확보에 나섰다. 갤러리에는 헤르난 바스, 안젤 오테로, 라이자 루, 맥아서 비니온 등의 신작들을 전시했다.

이번 페어에서 ‘판매왕’은 주로 대형 갤러리들 차지였다. 필립 거스턴, 루이스 브루주아 등 현대미술 거장의 작품을 판매하는 스위스 갤러리 하우저앤워스 갤러리 VIP들은 공식 오픈 전 VIP오프닝 때 이미 미국 작가 조지 콘도의 유화 ‘Distanced Figures’(2002)를 220만 달러에, 미국의 조각가 존 체임벌린의 ‘SEPERSTARMARTINI’(1999)를 100만 달러에, 아프리카계 미국 작가인 라시드 존슨의 ‘anxious Red Painting July 8th 2020’는 67만 5천 달러에 낚아챘다. 뉴욕 카스민 갤러리도 데이비드 호크니의 ‘Gregory, Hot Springs Arkansas’(1976)를 6자리 숫자(구체적인 가격은 알려지지 않음)로 판매했고, 이안 대번포드의 알루미늄패널 ‘Purple and Blue Study (After Bonnard)’(2020)와 베르나르 브네의 ‘Indeterminate Line’(2020)이 각각 8만 5천 달러에 판매되며 메이저 갤러리들의 활약을 보여주었다.


데이비드 호크니의 ‘Gregory, Hot Springs Arkansas’(1976)

이안 대번포드의 ‘Purple and Blue Study (After Bonnard)’(2020)


베르나르 브네의 ‘Indeterminate Line’(2020)

국내에서는 국제갤러리가 위신을 세웠다. 국제갤러리는 국내외 거장들의 동시대 미술 작품으로 구성한 온라인 부스를 선보였는데 대표적으로 한국 고유의 정신성을 바탕으로 한지의 물성을 살린 단색화 거장 박서보의 ‘묘법’ 연작 ‘Ecriture(描法) No. 041111’(2004)과 캔버스의 뒷면에서 앞면으로 물감을 밀어내는 배압법(背押法)이 특징인 하종현의 ‘접합’ 신작 ‘Conjunction 20-31’(2020), 현대미술가 양혜규 작품으로 방울 특유의 쇳소리가 인상적인 ‘소리 나는 운동’ 연작 ‘Sonic Gym–Coiffured Cosmic Compression’(2019) 등이 소개되었다. 덴마크 출신 3인조 작가 그룹 수퍼플렉스(SUPERFLEX)의 ‘We Are Having The Time of Our Lives’(2019)는 친숙한 구절을 LED 조명 설치로 보여주며 팝 문화에 깊게 자리 잡은 클리셰를 위트 있게 비판하며 젊은 컬렉터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는 후문이다.


박서보의 ‘Ecriture (描法) No. 041111’(2004)
하종현의 ‘Conjunction 20-31’(2020)

수퍼플렉스의 ‘We Are Having The Time of Our Lives’(2019)

아트바젤 마이애미비치의 또 다른 야심작은 행사 기간 내내 촘촘히 짜인 ‘컨버세이션’ 프로그램이었다. 일종의 토크 프로그램이라고 보면 되는데, 이 중에서도 바이엘러 파운데이션 디렉터 사무엘 켈러와 컬렉터 노먼 브라만, 엘라 폰타날스-시스네로스, 아트 바젤의 글로벌 디렉터 마크 스피글러가 함께 진행한 토론에서는 마이애미 해변에서 아트 바젤의 탄생을 되돌아보며 마이애미비치가 어떻게 다양한 예술 현장의 중심으로 서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들려주었다.


여러 우려와 달리 마이애미미치는 아트바젤의 제 2 도시 역할을 하며 글로벌 미술 시장 성장에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아쉽게도 온라인 뷰잉룸은 행사 기간과 함께 종료되었지만, 그날의 기억을 지켜볼 수 있는 사진과 일부 영상은 공식 웹사이트(artbasel.com/ovr)에서 확인할 수 있다. 앞으로 언젠가는 코로나 19가 잠잠해지겠지만, 미술 시장에서는 지금처럼 오프라인과 온라인이 함께하는 모양새로 발전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온라인 감상으로도 실물과 같은 감동을 느낄 수 있을 뿐 아니라 갤러리에서도 온라인을 통한 고객 관리 및 판매, 프로그램 개발에 적극적인 지원을 다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트바젤 마이애미비치는 그 과정에서 멋지게 활시위를 당긴 ‘잃어버린 2020년’의 마지막 미술 행사였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인생은 계속된다. 그리고 그 인생은 ‘여전히’ 축복이자 선물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사진 제공 아트바젤 및 각 갤러리

김이신 <아트 나우>편집장

<아트 나우>편집장. 매일경제신문사 주간지 <시티라이프>,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마담휘가로>를 거쳐 현재 <노블레스> 피쳐 디렉터와 <아트나우> 편집장을 맡고 있다. 국내 아트 컬렉터들에게 현대미술작가 및 글로벌 아트 이슈를 쉽고 친근하게 전달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2018-2019 아티커버리 전문가 패널, 2018-2019 몽블랑 후원자상 노미네이터를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