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덴낙원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자면, ‘합력하여 선을 이룬’ 공간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보이지 않는 구석구석까지 여러 작은 손길들이 닿아 있음을 느낄 수 있기 때문. 요리연구가 박소연 역시 이들 중 하나다. 티하우스에덴의 초기 스콘 개발에 자문을 하기도 한 그녀는 오늘도 영화 <바베트의 만찬> 속 주인공처럼 정성스레 만찬을 준비한다.
©김정한
먼저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요리연구가 겸 푸드스타일리스트, 플로리스트로 활동 중인 박소연이라고 합니다. 지금은 일주일에 3~4회 정도 쿠킹 클래스를 진행하고 있어요.
많은 분이 지난해 방영된 요리 프로그램 <#집밥천재 밥친구>(TV조선)에서 박소연 님을 만났을 것 같아요. 당시 ‘프랑스식 집밥천재’라는 타이틀로 알려지셨죠?(웃음)
제가 양식 전문가이고 남편이 프랑스인이라 그런 타이틀이 붙었나 봐요(웃음). 사실 제 요리가 프렌치 푸드에 국한된 것은 아니랍니다. 양식 전반을 다루되 한국적 색채가 약간 가미된 음식들을 연구하고 선보입니다.
원래부터 요리연구가의 길을 꿈꿨나요?
아뇨, 사실 저는 대학에서 영화연출을 공부했어요. 요리나 꽃에 취미가 있다는 것은 다소 늦은 나이에 깨달았죠. 대학교 4학년 때 가족들이 모두 시드니에 이민을 가게 되면서 학업을 마쳐야 했던 저만 한국에 홀로 남겨졌어요. 그때 홀로 이것저것 요리를 해보면서 재능을 깨달았죠. 어찌 보면 생존을 위해 요리를 시작한 거예요(웃음).
©김정한
영화 연출이라니 다소 의외네요!
그렇죠? 그래도 대학에서 공부한 게 은근히 도움이 돼요. 원래 연출이 모든 것을 이해해야 하는 자리니까요. 카메라 구도나 빛의 방향 등등. 사람들을 아울러야 하는 일이기도 하죠. 요리 역시 하나의 연출을 이뤄야 합니다. 저는 식탁에도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지금도 쿠킹클래스를 진행할 때면 최소 2주에 한 번 테이블의 테마를 바꿉니다. 수강생을 대할 때도 한 분 한 분 제집에 초대한 손님이라 생각하고 살뜰히 챙기려고 해요. 몸은 조금 피곤해도 그렇게 정성을 쏟았던 것이 제 클래스의 특징과 장점을 만든 것 같습니다.
시시각각 바뀌는 쿠킹클래스 테이블. 그녀는 해외에서 생활하는 동안 매달 5권 이상의 현지 라이프스타일 매거진을 보며 독학으로 테이블 세팅 및 데코레이션을 터득했다 ©김정한
그렇다면 어떻게 요리연구가가 되셨나요?
한국에서 홀로 생활하는 동안 쿠킹클래스 수업을 들었는데 그때 만난 선생님의 라이프스타일이 마음에 들었어요. 저처럼 집에서 쿠킹클래스가 진행됐는데 오전에는 수업하고 오후에는 가정을 충실히 돌볼 수 있겠더군요. 요샛말로 ‘워라밸’이 가능했던 일이죠. 이후 가족들이 있는 시드니로 넘어가 플로리스트 스쿨, 쿠킹 커머셜 코스* 등을 수강하며 전문 지식을 익혔습니다. 이후 중국 상해로 넘어가 약 5년간 요리 연구가, 푸드스타일리스트, 파티플래너로 일했습니다.
* 전문 레스토랑 개업을 준비하는 이들을 상대로 한 클래스
한국에서 활동을 재개한 건 4년 정도 되셨죠?
맞습니다. 남편 사업차 귀국을 했고 한동안 휴식기를 가졌어요. 이후 숙명여대에서 르코르동블루 코스를 밟았고요. 사실 클래스를 열 때 큰 기대를 하지 않았어요. 한 네 분 정도만 오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막상 인스타그램에 공지를 올리니 생각보다 많은 분이 신청을 하시더라고요. 웨이팅이 있을 정도로 말이죠.
박소연 요리연구가의 인스타그램 계정. 그녀는 팔로워 2만 명이 넘는 마이크로 인플루언서다
제일 큰 것은 역시 창작의 고통이죠. 요리도 엄연히 트렌드라는 것이 존재하고, 시대의 흐름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는 항상 연구하고 자신을 발전시켜야 하니까요. 또다른 어려움은 사람을 대하는 것입니다. 흔한 일은 아니지만, 종종 수강생 중에 경계하는 분들이 계세요. 그럴 때 저는 오히려 마음을 열고 먼저 다가갑니다. 그렇게 진심을 내비치면 결국 거리를 두셨던 분들도 진정성을 알아봐 주시더군요. 그런 분들이 클래스에서 만든 음식을 먹으며 “맛있어요”라고 활짝 웃으실 때 가장 희열을 느끼는 것 같아요(웃음).
©김정한
에덴낙원 이야기를 좀 해볼까요? 처음 어떻게 이곳을 알게 됐어요?
분당 예수소망교회의 교인이자 에덴낙원 프로젝트에 참여한 지인의 소개로 이곳을 처음 알게 됐어요. 거의 초창기였죠. 그때 마침 에덴낙원이 티하우스에덴을 준비 중이었고, 차에 어울릴만한 스콘 레시피 개발이 필요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크랜베리와 피칸이 들어간 스콘을 만드는 데 도움을 드렸답니다.
티하우스에덴의 스콘. 현재는 박소연이 자문한 메뉴 외에도 얼그레이, 초코 등을 가미한 스콘을 맛볼 수 있다 ©김일다
레시피 개발 과정도 들려주세요.
저는 음식을 할 때 식감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요. 티하우스에덴의 스콘을 개발할 때도 피칸의바삭함과 크랜베리 특유의 쫀득함, 스콘의 말랑함 등이 어우러지도록 했어요. 티와 곁들여 먹을 때 먹는 이로 하여금 ‘씹는 재미가 있네?!’라는 생각이 들도록 말이죠.
지금도 종종 에덴낙원을 방문하세요?
물론이죠. 시어머니와 친정어머니를 모시고 이곳을 찾은 적도 있는걸요. 당연한 이야기지만, 요리하는 사람에게 식기가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데 이천에 도자기 식기를 구매하러 갈 때도 이곳을 들린답니다.
그렇네요. 이제 보니 집에 정말 많은 식기가 눈에 띄어요.
르코르동블루 수업을 들으며 절실히 느낀 것 중 하나인데요, 음식은 담음새도 무척 중요합니다. 요리의 질도 물론 중요하지만, 어떤 그릇에 어떻게 담느냐에 따라 수십만 원을 호가하는 요리도, 그냥 버려지는 음식도 될 수 있죠. 그렇다고 무조건 값비싼 그릇을 써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제 그릇 중에는 외국을 돌아다니며 산 값비싼 것도 있지만, 남대문에서 발굴한 것들도 있어요(웃음). 결국 플레이팅은 흰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는 것과 같아요. 다양한 플레이팅을 선보이기 위해 연구와 고민을 거듭합니다.
박소연 요리연구가가 모은 다양한 식기들 ©김정한
에덴낙원을 방문할 때 받는 느낌도 궁금합니다.
무엇보다 그 취지에 크게 공감합니다. 에덴낙원은 그저 기일에 잠깐 들러 인사만 하고 가는 곳이 아니죠. 고인과 산 자가 한 곳에서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는 콘셉트는 해외 그 어디에서도 보기 힘들다고 생각해요. 공간을 둘러보며 ‘나도 훗날 이런 곳에 안치되고 싶다’라고 생각했어요.
플로리스트로도 활동하는 만큼 가든을 보는 관점도 남다를 것 같아요.
다양하게 구성된 에덴낙원의 자연을 즐깁니다. 티하우스에덴 주변에서는 주로 따뜻하고 아기자기한 느낌의 꽃들을 볼 수 있는 반면 예배당과 봉안당 쪽에는 수크령을 심어 차분하고 세련된 인상을 주었죠. 저는 그런 대조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에덴낙원에서 특별히 좋아하는 공간이 있나요?
아무래도 티하우스에덴이겠죠? 하지만 봉안당이 주는 인상도 좋아요. 잘 정돈된 갤러리를 방문한 느낌이니까요. 너무 세련되어 자칫 차가워 보일 수도 있었는데 풍성한 채광이 이를 많이 중화시키는 것 같아요. 저는 사람도, 공간도 인간미 넘치는 것을 좋아합니다(웃음).
©김정한
인터뷰 내내 ‘사람’에 초점을 맞춘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그렇기에 언제나 정성스러운 환대의 식탁을 준비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맛있는 음식에는 힘이 있다고 생각해요.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마주하게 되는 국 한 그릇을 떠올려 보세요. 어머니가 끓여준 국 한 그릇에 생기를 얻죠. 음식에는 마음을 치유하는 힘이 있는 것 같아요. 어떤 사람들은 미래에 알약 하나 먹고 허기짐을 해소할 수 있는 알약이 개발됐으면 좋겠다고 하잖아요? 하지만 그렇게 되면 인생의 큰 즐거움 하나가 사라진다고 생각해요. 프랑스인들은 한번 만찬을 가지면 3~4시간씩 앉아 음식을 즐겨요. 대화를 나누며 서로의 온기를 느끼는 건데 저는 인생에 있어 그런 것들이 참 중요하다고 봐요. 아무리 기술이 개발되어도 식문화만큼은 바뀌지 않았으면 해요(웃음).
마지막으로 어떤 요리연구가로 기억되길 바라나요?
“음식이 믿을만하다. 동시에 사람도 따뜻하다”라는 인상을 주었으면 해요. 저는 음식에 정답은 없다고 생각해요. 사람마다 입맛이 제 각각이니까요. ‘정답이 있는 음식’보다 중요한 것은 ‘인간미 있는 음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음식 안에도 인간미가 스며들어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박소연이 수집한 다양한 커트러리 ©김정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