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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덴 미디어

컬처
2020-10-23

삶과 죽음의 섭리를 관망하는 아름다운 디지털 전시, <팀랩: 라이프>



동시대 아티스트 컬렉티브 중에서 팀랩만큼 인기 있는 그룹이 또 있을까? 코로나19 속에서도 많은 이들이 기다린 <팀랩: 라이프>전이 드디어 DDP에서 관객과 만났다. 내년 4월 4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에서 팀랩은 환상을 현실로 구현한 아름다운 놀이터를 조성했다.




디지털 아티스트 그룹 '팀랩(teamLab)'은 아티스트와 엔지니어, 프로그래머, 디자이너, 건축가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과학융합예술을 선보이는 팀이다. ‘디지털’이라는 개념이 이제 막 지구촌 곳곳에 새로운 반향을 일으키던 2001년, 이노코 도시유키(팀랩 대표)와 친구들은 삼삼오오 모여 창의적인 작업을 위한 일종의 실험실 역할이 될만한 공간을 만들었다. 당시 이들은 여느 신생 아티스트 그룹과 마찬가지로 전시 공간 확보나 재정 지원에서 어려움을 겪었지만, 누구보다 디지털 아트의 창의성이 지닌 잠재력을 믿었다.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다각적인 관객 참여를 이끌어낸 팀랩의 작품은 관객들에게 놀라운 몰입감을 선사하며 새로운 체험과 교감의 장을 선보이고 있다.


‘꽃과 사람, 제어할 수 없지만 함께 살다-초월하는 경계, 1년을 담은 1시간’. 계절에 따라 피고 지는 꽃들의 생과 사를 디지털 예술로 구현했다. 마치 에덴가든의 사계절을 보는 느낌이다. 관객이 작품 앞에 가만히 서 있으면 영상 속 꽃송이가 평소보다 더 많이 피어나지만, 꽃을 건드리거나 주변을 거닐면 일제히 꽃잎을 떨군다. teamLab: Life, Seoul ©teamLab

한국 관객에게 팀랩은 꽤 이미 익숙한 이름이다. ‘Dance!, Art Museum, Learn&Play! Future Park’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2016년 잠실에 오픈한 <팀랩월드> 덕분. 관객들은 일찍이 다양한 자연의 모습을 비롯해 광화문, 남산타워와 같은 서울의 풍경, 그리고 각종 상형 문자들이 터치와 움직임과 동화되며 만들어낸 거대하고 환상적인 움직임을 경험했다. 무엇보다 수만 개의 LED조명이 패턴을 이뤄 우주의 모습을 연출한 작품은 <팀랩월드>의 하이라이트다. “예술은 현대인이 각자의 꽃을 만들고 아름다움이라는 개념을 확장하는 행위”라고 정의한 팀랩은 이번 전시에서 ‘라이프’라는 전시 명에 걸맞게 생명 자체에 집중하고 있다. 살아있음, 움직임, 꿈틀댐. 이 모든 것을 포괄하는 ‘라이프(생명)’라는 키워드 아래 팀랩은 자연에 깃든 축복과 위협, 문명이 가져온 혜택과 위기와 같이 상반된 요소를 작품으로 표현했다.



‘증식하는 무수한 생명’. 화려한 색채의 꽃들이 탄생과 죽음을 거듭하며 끝없이 증식한다. 증식한 꽃을 관객들이 만지는 순간, 꽃이 시든다. 팀랩은 이렇듯 관객이 작품에 변화를 가져오는 상호 작용을 추구한다. 기존 예술 감상법의 틀을 깼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teamLab: Life, Seoul ©teamLab

‘고동치는 대지’. 반복된 라인이 만들어 내는 입체적 높낮이가 마치 4차원의 우주를 연상케 한다. 관객이 빠르게 걷거나 뛰면 물결 모양이 더욱 요동친다. teamLab: Life, Seoul ©teamLab

팀랩은 DDP 배움터 지하 2층 디자인 전시관에 총 8개의 거대한 갤러리를 만들어 ‘증식하는 무수한 생명’, ‘고동치는 대지’를 비롯해 총 10개의 작품을 선보였다. 모든 것들이 우리의 삶 안에서 끊임없이 이어지며 시험에 들게 하지만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살아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팀랩은 생과 사 자체로 충분히 아름답다는 메시지를 매 작품에 걸쳐 강렬한 색감과 극적인 움직임으로 표현했다. 특히 인간을 집어삼킬 것 같은 거대한 파도가 사방에서 몰아치는 작품 ‘빅 웨이브: 거대한 몰입’ 앞에서 관객은 무시무시한 파도 덩어리를 눈앞에서 마주하는데, 몰입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집채만한 파도를 피할 수 없어 마침내 그 안에 빨려 들어간 관객은 이윽고 경계 없는 세계를 경험하게 된다. 무수한 물 입자가 모여 몽환적인 장관을 이루는 작품 ‘물 입자의 우주, Transcending Boundaries’도 신비로운 색감과 뛰어난 영상미가 인상적이다. 무엇보다 작품에 기대거나 만지는 순간 두 갈래로 갈라지는 물길은 몇 번을 봐도 압권이다.

‘Black Waves: 거대한 몰입’. teamLab: Life, Seoul ©teamLab

‘물 입자의 우주’. teamLab: Life, Seoul ©teamLab

꽃이 끝없이 피고 지며 탄생과 죽음을 영원히 거듭하는 작품 ‘교차하는 영원 속, 연속되는 생과 사’는 많은 관객이 사랑하는 포토 스팟 중 하나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피어나는 작품 속 꽃들은 매 순간 그 종류가 다를 뿐만 아니라 영상에서 펼쳐진 세상 또한 설치 장소에 밝아졌다 어두워지기를 반복하기에 사람들은 이곳에서 쉽게 발길을 떼지 못한다. 관객이 만지면 꽃이 지고, 가만히 닿아 있으면 평소보다 많은 꽃을 피우기도 하는데 이는 자연훼손에 대한 경각심을 전하려는 팀랩의 의도라고 한다.

교차하는 영원 속, 연속되는 생과 사’. teamLab: Life, Seoul ©teamLab

‘꽃과 함께 살아가는 동물들’. 다른 작품과 마찬가지로 관객이 꽃을 만지면 꽃잎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teamLab: Life, Seoul ©teamLab

무려 400명에 달하는 전문가가 모인 팀랩은 작품 구상에서 실행까지 전 과정을 자체적으로 진행한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팀랩의 힘은 물론 최상의 비디오 장비와 전문가들의 수준 높은 역량, 그리고 집요할 만큼 주제를 파고드는 집념에서 나온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다. 이들의 작품을 더욱 매력적으로 만드는 것은 특유의 스토리텔링. 전시장 벽면을 장식한 작품 서문에는 팀랩의 서사가 잘 드러내는데, 이를테면 작품 ‘생명은 생명의 힘으로 살아 있다’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 있다.

“나 자신과 바깥 환경은 둘이 아니다(不二). 서로 가르고 나눌 수 없다는 가르침이 있다. 분리의 반대말은 통합이 아니다. 둘로 보이는 것이 실은 처음부터 하나였음을 깨닫는 일로부터, 우리는 분리를 벗어난다.”

‘생명은 생명의 힘으로 살아 있다’. 영상이 상영되는 허공에 ‘生(날 생)’이란 한자는 아름다운 붓글씨로 완성된다. teamLab: Life, Seoul ©teamLab

앞으로 디지털 기술은 예술에 점점 더 깊게 개입할 것이다. 디지털 아트가 확대될수록 작품과 전시 공간의 경계, 관객의 동선과 행위의 경계는 더욱 허물어질 것이다. 팀랩의 이번 전시처럼 예술 작품이 각 방과 방을 연결하고 관객끼리의 움직임을 연결하며 새로운 ‘관계’를 형성할 때 비로소 자유로운 예술적 경험이 가능해 보인다. 삶과 죽음이라는 조물주의 섭리. 그 아름다움을 경험하고 싶다면 전시장을 둘러보길 추천한다.

‘꿈틀대는 골짜기의 꽃과 함께 살아가는 생물들’. 꽃이 탄생과 사멸을 거듭하며 생물의 형상을 만들어 간다. 생물들은 다른 생물을 잡아먹거나, 다른 생물에 잡아 먹히면서 함께 하나의 생태계를 형성한다. teamLab: Life, Seoul ©teamLab

‘경계를 초월한 나비 떼, 경계 너머 태어나는 생명’. 나비 떼가 경계를 넘어 전시장 안쪽으로 들어온다. 관객의 발끝에서 태어난 나비 떼는 관객과 닿는 순간 죽는다. teamLab: Life, Seoul ©teamLab

김이신 <아트 나우>편집장

<아트 나우>편집장. 매일경제신문사 주간지 <시티라이프>,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마담휘가로>를 거쳐 현재 <노블레스> 피쳐 디렉터와 <아트나우> 편집장을 맡고 있다. 국내 아트 컬렉터들에게 현대미술작가 및 글로벌 아트 이슈를 쉽고 친근하게 전달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2018-2019 아티커버리 전문가 패널, 2018-2019 몽블랑 후원자상 노미네이터를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