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했던 장마와 태풍이 지나가자 가을 향기가 코끝을 스친다. 많은 이들이 풍요로운 가을 정취를 만끽하기 위해 에덴낙원을 찾으며 티하우스에덴은 더욱 분주해졌다. 티 소믈리에로 일하고 있는 윤용기 실장은 정들었던 교정을 떠나 이곳 티하우스에덴에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오늘은 그리스도의 향기가 가득한 그의 일상을 들여다보았다.
티하우스에덴 바에서. 사진: 김정한
안녕하세요. 먼저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현재 바리스타, 로스터 겸 티 소믈리에로 티하우스에덴에 근무하고 있는 윤용기 실장이라고 합니다.
티 소믈리에가 되기 전 오랫동안 교편을 잡으셨다고 들었어요.
네, 저는 1983년도 경기도 교사로 임용되어 25년간 교사로, 10년간 교감, 교장 등 관리자로 근무했습니다. 35년간 교직 생활을 한 셈이죠. 중고등학교에서 과학과 화학을 가르쳤고요.
원래 티나 커피에 관심이 많았나요?
네, 아무래도 학교에서 화학을 가르치다 보니 커피가 일으키는 화학 작용에도 관심이 가더군요. 학교에서 관리자로 승진한 뒤에는 선생님들 혹은 학부모들과 소통의 매개로 커피를 활용하기도 했습니다. 나중에는 대학 내 평생교육원에 다니며 아예 커피 자격증을 따기에 이르렀죠. 티 소믈리에보다 바리스타로 먼저 나선 것입니다.
교사 재직 시절 윤용기 실장의 철학은 신뢰와 배려였다. 그리고 그 생각은 에덴낙원에서 근무하고 있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사진: 김정한
바리스타 자격증을 딴 과정도 궁금합니다.
바리스타 자격증을 딴 것은 교감으로 일할 때입니다. 퇴임을 10년 즈음 앞두고 앞으로 무슨 일을 할까 고민을 했는데요, 제가 저희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유산 중에 뛰어난 미각이 있습니다(웃음). 평소 커피에 관심도 많아 ‘그럼 장기를 살려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볼까?’라고 생각했죠. 처음에는 핸드드립 그다음은 에스프레소 과정을 공부해 바리스타 2급 자격증을 취득했습니다. 이후로도 커피에 관한 관심이 이어져 라테아트나 로스팅 등에 관해서도 공부했죠. 한국의 커피 1세대라고 불리우는 박이추 선생님이라는 분이 계신데, 이분이 강원도 연곡항에 보헤미안이라는 카페를 운영하셨어요. 그분 같은 커피 장인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집에서는 아무래도 커피를 공부하는 데 한계가 있더군요. 생각하다 제가 다니는 예수소망교회의 북카페에서 봉사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티하우스에덴까지 오시게 됐나요?
카페 봉사를 하던 중 한 권사님으로부터 제안을 받았어요. 사실 당시에 저는 나름대로 은퇴 계획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내와 함께 처가가 있는 지방으로 귀농을 생각하고 있었죠. 차곡차곡 준비도 하고 있었고요. 그런데 갑자기 이런 제안을 받고 고민을 하니 당연히 처음 아내는 반대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때로는 우리를 놀랍게 이끄시죠. 매일 새벽기도를 나가는 아내가 하나님으로부터 기도 응답을 받았습니다. 저희 모두 하나님이 허락하신 이 특별한 기회에 순종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이렇게 2018년 3월 티 하우스로 오게 되었어요.
티하우스에덴 오픈을 준비하고 있는 윤용기 실장. 사진: 김정한
정말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언제나 우리를 인도하시는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나도 알지 못하는 사이 십수 년 전부터 하나님은 늘 나를 향해 구체적인 계획을 갖고 계셨던 것 같아요. 자격증을 취득한 것도, 카페에서 봉사하게 된 것도, 그리고 이곳 티하우스에덴에 오게 된 것도 모두 하나님의 일꾼으로 만드는 과정이었습니다. ‘나이가 든다’라는 것은 결국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깨닫는 과정 같아요.
그런데 처음에는 티 소믈리에 자격증을 갖고 있지 않았잖아요?
네, 그래서 처음 티하우스에덴에 왔을 때 마음에 짐이 있었어요. 저 스스로 ‘무자격자가 티를 내린다’라는 것에 대한 부담이 있었죠. 그래서 아주대학교 평생교육원(현 글로벌미래교육원)에서 다시 티 소믈리에 코스를 밟았습니다. 덕분에 지금은 떳떳하게 차를 내릴 수 있게 됐죠(웃음).
티하우스에덴 전경. 사진: 김일다
티 소믈리에가 되는 과정에 있었던 에피소드가 있나요?
음, 학교에서 저를 가르친 교수님이 계시는데요, 사실 그분이 제가 학교에 있을 때 개최하던 학부모 커피 강좌에 참여한 적이 있었어요. 제가 학교에서 ‘커피 내리는 교장’으로 유명했거든요. 참 재미있는 인연이죠? 코스를 거치는 동안 홍차의 역사부터 제조방식, 블렌딩 등 다양한 공부를 했습니다.
근무하고 있는 티하우스에덴 자랑 좀 해주세요(웃음).
티하우스에덴은 건물 전면이 유리로 되어 있어서 채광과 환기가 잘됩니다. 또 앉아 있으면 실내가 아닌 자연 속에 앉아 있는 기분이 들어 힐링도 되죠. 실제로 매일 아침 출근해 건물 안팎에 있는 나무들을 돌보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합니다. 식물도 사람과 똑같아요. 쳐다보지 않고 방치하면 금세 시드는데, 아끼고 보듬어주면 잘 자라죠. 참, 한 가지 장점이 더 있습니다. 요샛말로 ‘사진 맛집’이라고 하죠?(웃음) 건물 층고가 높아 사진이 참 잘 나와요. 덕분에 연인들이 사진을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이른바 핫플레이스로 알려지게 됐죠.
티하우스에덴 앞 가든을 거닐며 나무를 돌보고 있는 윤용기 실장. 잼에 사용하는 블루베리를 직접 기른다. 사진: 김정한
혹시 이곳에서 직접 재배하는 차도 있나요?
허브티 중 민트와 로즈마리는 근처 셰프 가든에서 재배해 아이스티의 베리에이션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바로 앞 가든에서는 잼을 만들 때 쓰는 블루베리를 기르고 있죠.
티하우스에덴 내부. 사진: 김일다
티하우스에덴에서 맛볼 수 있는 홍차. 사진: 김정한
티하우스 에덴의 대표 메뉴도 소개해주세요.
밀크티를 추천합니다. 크게 로열 밀크티와 얼그레이 밀크티가 있는데요, 이는 제가 실장으로 부임 후 개발한 메뉴입니다. 보통 밀크티는 한번 끓여 식힌 뒤 얼음을 넣어 제조하는 게 일반적인데, 저희는 과정이 좀 다릅니다. 먼저 우유와 비정제 설탕을 넣고 1시간 이상 졸여가며 저어서 연유를 만듭니다. 꽤 중노동이지만, 이렇게 하지 않으면 충분히 맛이 나지 않아요. 이후 찻잎을 넣어서 20시간 이상 냉침을 시키고 걸러서 짜냅니다. 커피에 홍차를 블렌딩한 ‘앤젤 오브 더 모닝’도 맛보시길 권합니다. 핸드드립 커피에 홍차 향만 살짝 올라올 정도로 블렌딩을 한 것인데 다른 곳에서는 맛볼 수 없는 티하우스에덴만의 자랑이죠.
핸드드립 커피를 내리고 있는 윤용기 실장. 사진: 김정한
이곳에서 차와 관련된 프로그램도 운영하나요?
네, 시즌에 맞춰 크리스마스 리스 만들기, 화분 가꾸기 같은 이벤트를 진행해요. 지금은 코로나 사태로 잠시 중단했지만, 홍차 클래스도 성황리에 진행했죠.
실장님은 티하우스에덴에 오기 전 에덴낙원과 이미 인연을 맺었다고 들었습니다.
사실 저희 어머니를 에덴낙원에 모셨습니다. 제가 퇴임하기 몇 달 전 어머니가 신장이 안 좋아지셨어요. 이미 상황이 많이 악화되었을 때라 다음을 준비해야만 했습니다. 원래 저희는 충남 청양에 선산을 갖고 있어요. 20여 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가 묻혀 있던 곳이었죠. 어머니께 혹시 그곳에 가길 원하시냐고 여쭤봤는데 싫다고 하셨어요. 그럼 에덴낙원은 어떨까 싶었습니다. 예수소망교회에 출석을 하고 있어 일찍이 투어로 에덴낙원은 다녀온 적이 있었습니다. 지금만큼 시설이 완비되지 않았을 때지만, 봉안당이 참 좋았어요. 흔히 생각하는 납골당의 모습이 아니라 갤러리 같기도, 호텔 같기도 한 모습이었죠.
부모님의 봉안단을 찾은 윤용기 실장. 사진: 김정한
가족들도 모두 찬성을 하셨나요?
아니요. 가족 중에는 믿지 않는 이들도 있어서 사실 처음에는 설득하느라 애를 먹었습니다. 하지만 가족들을 모시고 와 투어도 시켜 드리니 모두 만족하셨어요. 다른 가족 중에 나중에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이곳에 모시고 싶다는 분도 있었고요. 이후 아버지도 화장 후 이곳으로 이장을 했습니다. 저희 장인어른께서 올해 90세가 되셨어요. 국가유공자여서 처음에는 호국원에 묻히길 원하셨죠. 그런데 요즘 들어 마음이 바뀌셨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장인어른과 장모님을 이곳으로 모실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아직 먼 훗날의 이야기일 수 있지만, 저와 아내도 이곳으로 오면 좋을 것 같고요.
사랑하는 어머니 곁에서 제2의 인생을 산다는 것. 어떤 느낌인지 궁금합니다.
살아 계실 때보다 오히려 더 부모님을 자주 찾아뵙는 것 같아요. 왠지 부모님께서 아들이 티하우스에덴을 잘 가꿀 수 있도록 돕고 있는 기분도 듭니다. 어머니가 작은 아들인 저를 무척 좋아하셨거든요. 그래서 그런지 제게 특별한 미각도 선물로 남겨 주셨죠. 몸과 마음을 잘 가꿔 오랫동안 이 일을 하고 싶습니다.
어머니의 봉안단에 새긴 성경 구절은 무엇인가요?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크게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시편 62편 2절)’로 정했습니다. 죽음을 앞두고 불안해하셨던 어머니를 생각하며 하나님 붙잡고 천국에 가시길 기도하는 마음으로 아내와 함께 선택한 구절입니다.
윤용기 실장 부모님의 부부단. 사진: 김정한
좀 더 뒤의 일이겠지만, 실장님의 봉안단에는 어떤 구절이 새겨지길 원하나요?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편 23편 1절)’로 하고 싶군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느끼며 살아온 제게 꼭 맞는 구절이 아닐까요?
사진: 김정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