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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01

사랑은 같이 있어 주는 것, 김재실 도산안창호선생기념사업회 이사장



“그는 성경을 극히 사랑하고 애독하였습니다. 특별히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이요' 한 말씀이나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한 말씀을 깊이 사랑하셨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그의 좌우명으로 삼았습니다.”(<크리스찬>, 1961) 목회자이자 문필가였던 늘봄 전영택 선생이 스승이었던 도산 안창호 선생을 회고하며 쓴 글이다. 김재실 도산안창호선생기념사업회 이사장은 자신은 죽고 조국과 하나님의 의를 위해 살았던 도산 선생의 가르침을 삶으로 실천하고자 노력 중이다. 지지난 겨울 어머니를 에덴낙원에 모신 그를 만나 삶과 죽음에 대한 관점과 태도를 살폈다.



photo by 김정한


이사장님은 많은 이들의 존경과 신뢰를 받으며 살아오셨습니다. 삶에 대한 이사장님의 태도가 궁금합니다.

글쎄요. 사실 저는 평생을 ‘주어진 존재’라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능동적인 존재가 아닌 피동적인 존재라는 것이죠. 생각해보세요. 우리는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나는 것이 아니고 그저 생명이 주어졌기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어진 존재로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주어진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 길에는 좋은 일도 있고, 그렇지 못한 일도 있죠. 즐거운 일도 있지만 고통스러울 때도 있습니다. 이것은 내가 만든 길이 아니라 주어진 길입니다. 그 길을 뚜벅뚜벅 걷는 것. 그게 우리의 삶이 아닐까요?


다소 의외의 답변이네요(웃음).

직장 생활을 하면서 회사가 아닌 내 개인의 보직이나 보수를 위해 무언가를 요구해본 적이 없어요. 그냥 주어지는 대로 만족하며 일했죠. 돌이켜 보면 그게 제가 오래 일할 수 있었던 비결이 아닐까 싶습니다. 단, 주어진 일만큼은 적극적이고, 도전적으로 해냈어요. 능동은 자기 욕심의 표현이며 수동은 욕심을 버리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인간사는 (쟁취와 극복을 위한)투쟁으로 점철됐지만, 예수께서는 평화를 안고 사랑하라고 하셨죠.


에덴낙원에 어머님을 모신 것으로 압니다. 에덴낙원의 첫인상이 어땠나요?

재작년(2018년 12월)에 어머님이 돌아가셨어요. 12월의 어느 추운 겨울날이었는데, 만약 공원묘지나 선산에 모셨으면, 추운 겨울 산속에 버려진 듯 모셔졌을 것 같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에덴낙원에서는 이와 다른 따스함이 느껴졌어요. 여타 봉안당처럼 어둡지도, 봉안함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지도 않았죠. 밝고 따뜻한 느낌이라고 할까요? ‘따뜻한 안방 같은 곳에 모시게 되어 참 다행이다’ 싶었어요. 어쩌면 이런 것이 하늘나라가 아닐까 싶습니다. 하늘나라는 추상적인 관념이 아니에요. 추웠던 삶에 따뜻함을, 고단했던 삶에 평화를, 배고팠던 삶에 든든함을 선사하는 것. 그게 바로 하늘나라가 아닐까요?


봉안당 복도 photo by 김일다

에덴낙원 봉안당의 특징은 무엇이라 생각하세요?
보통 봉안당은 봉안단이 유리로 되어 있죠. 그 안에 안치된 봉안함이 보이는데 조금 스산한 느낌마저 들어요. 게다가 아주 촘촘하게 구성되어 있죠. 반면, 에덴낙원의 봉안당은 기본적으로 모두 봉인되어 있어요. 게다가 널찍하기도 해서 중간중간에 앉아 대화를 나눌 수도 있죠. 마치 잘 짜인 가구로 정리된 안방 내지 응접실 같은 느낌입니다. 에덴낙원 봉안당에는 대화의 매개들이 있어요. 그저 인사만 나누고 부랴부랴 돌아가는 그런 봉안당이 아닌, 응접실 소파에 앉아 함께 온 가족 및 친지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그런 공간이죠. 영혼과 영혼 그리고 함께 온 가족과 친지들을 매개해주는 장소인 셈입니다.


봉안당 전경 photo by 김일다

봉안당을 매개의 공간으로 바라보는 관점이 특별하게 느껴집니다.
(휴대폰을 꺼내 들며)이걸 보세요. 이 작은 휴대폰 하나로 모든 사람들이 연결되죠. 심지어 모르는 사람들도. 시공간에 있어서 오늘날 공간을 초월하여 연결되어 있어요. 이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에도 똑같이 적용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제게 에덴낙원은 삶과 죽음의 동거 공간입니다. 영혼과 영혼의 대화는 매체만 있으면 되는데 에덴낙원이 그 역할을 해줘요. 즉, 연결의 매개가 되어 어머니와 대화를 나눌 수 있게 해주죠. 에덴낙원은 단순한 봉안당이 아닙니다. 이 매개는 살아있는 나를 위해 일상의 공간들을 제공해줍니다. 식당이 있어 먹고 마시는 공간을 마련해주죠. 게다가 호텔까지 있어 잠을 잘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에덴낙원에 가면 마치 어머님과 같이 먹고, 자고, 일상을 나누는 기분입니다. 편안한 마음으로 시간을 보낼 수 있죠.


도산공원에 있는 도산안창호선생기념사업회 이사장실에서. 김재실 이사장이 최근 새로 제작한 에덴낙원 브로셔를 들춰보고 있다 photo by 김정한


photo by 김정한

연결과 소통에 유독 큰 의미를 두시는 느낌입니다.
부모님과의 대화라는 게 사실 별거 없어요. 저도 자녀들과 대화를 나누는데 사실 내 과거 이야기, 기억나는 것을 이야기하다 보면 훈계가 되어 버려요(웃음). 어쨌든 중요한 것은 함께 있는 것으로 생각해요. 곁에 있을 때도, 없을 때도 자녀를 생각하며 묵상을 하는데 이게 곧 생각의 대화가 됩니다. 어머님은 돌아가셨지만, 어머님을 조용히 생각하며 묵상하면 다시금 어머님과 연결이 되는 거죠.


도산공원에서 photo by 김정한

‘함께 있다’라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사랑은 결국 같이 있어 주는 것입니다. 떨어져 있으면 멀어지기 마련이죠. 예전에는 온 가족이 함께 모여 살았어요. 물리적으로 지척에 있다 보니 자연스레 연결고리가 생기죠. 오늘날은 모두 뿔뿔이 흩어져 살잖아요? 하지만 제가 말하는 ‘함께’의 의미가 비단 물리적 거리만 이야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상대방을 생각하는 것도 함께하는 것이죠. 에덴낙원에 모신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합니다. 보통 선산이라고 하면 발길이 닿기 힘든 산속에 있잖아요? 묘소에 가도 딱히 할 일이 없어요(웃음). 그렇게 죽은 자와의 대화가 끊겨 버립니다. 그런데 에덴낙원은 서울에서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적당한 거리에 있어요. 멀리 있으면 멀다고 안 가게 되고, 반대로 너무 가까워도 ‘갔다’는 느낌이 들지 않아 더 안 가게 돼요. 그런데 에덴낙원은 ‘서울에서 50분 거리’라는 적당한 거리감이 있다 보니 방문할 때마다 새로운 느낌이 들어요. 새로움을 느끼니 자주 가게 되죠. 에덴낙원에서는 모셔져 있는 어머님도, 나도 ‘편히 쉰다’는 느낌이 들면서 온전히 하루를 같이 지낼 수 있다는 느낌입니다.

그렇다면 크리스천에게 쉼이란 무엇인가요?
저는 기도라고 생각합니다. 기도에는 바라는 것도 담겨 있지만, 명상의 의미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기독교의 명상은 하나님을 내 안에 모시는 것이죠. 하나님을 모시고 만나고 영접하는 것. 이것이 크리스천의 쉼이 아닐까 싶어요.


photo by 김정한

이사장님이 정의하는 죽음이란 어떤 것인지도 궁금합니다.
4, 50년 전에는 외국에 출장이나 여행을 갈 때면 공항에서 많은 사람이 모여 환송회를 했어요. 꽃다발도 주고 단체 사진도 찍곤 했죠. 외국에 나가기가 그리 쉽지 않다 보니 가족이나 회사 직원들이 공항까지 마중을 나왔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우습죠?(웃음) 그렇게 출국 수속을 받기 전까지 많은 사람의 왁자지껄한 환송 속에 있다가 탑승 구역으로 들어가는 문이 열리고 닫히면 결국 나 혼자만이 남아있어요. 죽음도 그런 것으로 생각해요.

그렇다면 남겨진 사람들은 왜 죽음을 슬프고 두려운 것으로 생각할까요?
죽음에 이르는 과정이 두려운 것이겠죠. 병, 외로움, 불의의 사고 등에 대한 두려움과 절망. 결국 죽음 자체보다 절망과 고통이 두려운 것입니다. 저희 어머님은 94세의 나이로 조용히 주무시다 돌아가셨어요. 주변에서 다들 아주 행복하게 가신 것이라고 이야기해요. 어머니는 영원한 안식을 위해 좋은 곳으로 가셨습니다. 그저 남아 있는 우리들이 아쉽게 생각하는 것뿐이죠.


photo by 김일다

어머니의 봉안단에는 어떤 성경 구절이 적혀 있나요?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 이 모든 것은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시느니라” 누가복음 12장의 말씀이죠. 저는 아버지를 일찍 여읜 편입니다. 1967년. 그러니까 제가 23살이 되던 해였죠. 당시에는 모두가 그랬지만, 우리 집도 형편이 어려웠어요. 먹고, 마시고, 입는 것 모두 여의치 않았죠. 그래서 이 말씀이 저희에게 더 크게 와 닿았던 것 같아요. 이 말씀은 가족 예배를 드릴 때마다 늘 외우던 구절이었기에 어머니와 저의 연결고리 같은 말씀입니다. 제 봉안단 문구도 제가 평소에 좋아하는 구절보다는 자녀나 손자에게 하고 싶은 말씀으로 남길 것 같네요.

김일다 아티스트, 사진가

독일 Staatliche Hochschule fuer Gestaltung Karlsruhe (ZKM)에서 Visual Communication Design Diplom 과정을 이수하였으며 2006년부터 다양한작품과 사진을 그리고 기업의 콘텐트플래너로써 활동하고 있다. 최근에는 에덴낙원의 영상 프로젝트와 사진을 그리고 인터뷰도 진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