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유례없는 바이러스의 창궐은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주었다. 이 ‘소중한 일상’ 중에는 교회도 포함된다. 매주 모여 예배를 드리고, 함께 기도하고, 식사를 나누던 공간. 진정한 성전은 우리 마음속에 있는 것이라고 하지만, 크리스천의 셸터인 교회에 예전만큼 발길이 닿지 않는 것은 분명 안타까운 일이다. 정지연 편집장의 글은 이런 아쉬움을 조금이나마 달래준다. 그녀는 신앙뿐 아니라 건축적, 예술적으로도 의미가 있는 국내외 현대 교회 건축물들을 소개한다.
* 사실 종교 건축은 특정 학문 분야가 아니다. 하지만 믿음의 대상을 더욱 잘 형상화하고, 인간이 그 대상을 보다 가까이 느끼도록 돕고, 종교의식을 목적에 맞게 치를 수 있도록 공간을 기획한다는 점에서 나름의 영역으로 자리 잡아가는 추세다. –글쓴이 주
생동감 넘치는 십자가, ‘카필라 산 베르나도’
아르헨티나 코르도바 외곽. 잡초가 우거진 허허벌판을 걷다 보면 전혀 예상치 못한 건물 하나와 마주하게 된다. ‘카필라 산 베르나도 Capilla San Bernardo’라는 이름의 이 건물은 다름 아닌 개인 예배당. 외관은 얼핏 황량한 벌판에 벽돌로 쌓아 올린 창고처럼 보이지만, 내부에 들어가면 전혀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아르헨티나 코르도바 외곽에 있는 개인 예배당 ‘카필라 산 베르나도’ ⓒNicloas Campodonico
조용하고 한적한 곳에서 신과의 대화에 집중하길 원했던 건축주는 건축가 니콜라스 캄포도니코Nicloas Campodonico에게 설계를 의뢰했고, 그가 기획한 전혀 새로운 예배당의 건축 계획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이 건물이 탄생했다. 사실 처음 공간 안에 들어서면 누구나 적잖이 당황할 수밖에 없다. 예배당이라고 하는데 십자가 하나 놓여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당혹감과 의혹은 이내 사라진다. 태양의 움직임에 따라 곧 건물 위로 수십 가지 형태의 십자가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건축가는 오래된 붉은 벽돌로 마치 조각물을 만들 듯 아주 작은 공간을 만들었고, 위아래에 각각 창을 내듯 하나씩 구멍을 뚫었다. 마지막으로 위쪽에 낸 구멍에는 막대 두 개를 간격을 두고 가로와 세로로 고정했다.
‘카필라 산 베르나도’. 옆에서 바라봤을 때는 그저 간격을 두고 설치한 두 개의 막대만 보인다. ⓒNicloas Campodonico
저 멀리 여명이 비치면 기적이 시작된다. 구멍을 통과한 아침 햇살이 막대를 비추면 그 그림자가 반대편 벽면에 드리우는데, 이때 태양의 움직임에 따라 길이와 형태가 달라지며 수십 가지 그림자 십자가가 표현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두 막대의 그림자는 가까워지고 온전한 십자가 형태에 이르게 된다.
일출에서 일몰까지 태양의 흐름에 따라 촬영한 예배당 내부. 다양한 형태의 십자가 그림자가 맞은 편 벽면에 드리운다 ⓒNicloas Campodonico
온전한 형태에 다다른 십자가 형상의 그림자 ⓒNicloas Campodonico
이곳에는 별도의 조명이나 난방 시설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그것이 뭐 대수일까? 시시각각 변화하며 온종일 펼쳐지는 자연과 십자가의 섭리 앞에 우리는 그저 감탄하게 된다.
나는 세상의 빛이니, ‘빛의 교회’
앞서 소개한 ‘카필라 산 베르나도’가 그림자를 활용했다면, 일본 오사카 인근에 있는 ‘빛의 교회 Church of the Light’는 빛 자체를 이용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안도 타다오는 자연의 여러 요소를 건축에 접목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해온 건축가다. 빛, 바람, 물, 소리 등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지만, 쉽게 지나쳐온 요소들을 공간 안으로 끌어들여 새로운 인식과 풍요로움을 만들어낸다. 특히 ‘빛의 교회’에서는 이러한 그의 노력이 두드러진다. 이 교회의 실제 이름은 이바라키 카스가오카 교회. 1989년에 완공됐다.
일본 오사카 인근에 위치한 ‘빛의 교회’ ⓒArchute
사실 이 프로젝트는 거장 건축가에게도 쉽지 않은 모험이었다. 무엇보다 걸림돌이 되었던 것은 턱없이 부족한 예산이었다. 하지만 안도 타다오는 시골교회 교인들을 외면할 수 없었고, 대신 이전과 다른 방식의 디자인을 제안하며 난제를 풀어갔다. 그는 공간 안에 별도의 형상을 제작하지 않고 네모반듯한 노출 콘크리트(노출 콘크리트는 안도 타다오의 시그니처 같은 소재다) 예배당 벽에 가늘고 긴 십자가 형태의 구멍을 냈다.
지난해 국내에 개봉한 영화 <안도 타다오>에 소개된 ‘빛의 교회’. 안도 타다오가 직접 주연을 맡아 건축가로 자신의 인생을 재현한 다큐멘터리 영화다
콘크리트 틈 사이로 빛이 들어와 표현해내는 자연의 십자가는 잠시 머무는 이들로 하여금 경이로움과 엄숙함을 느끼게 만들며, 신앙에 대해 돌이켜보는 시간을 선물한다. 오전에는 동쪽에서 든 빛 때문에 십자가 한쪽이 기울어져 보이지만 정오에는 가득한 빛에 마치 십자가가 빛을 내는 듯한 인상을 준다. 안도 타다오가 국제적 명성을 얻으며 교회 역시 전 세계적 관광 명소가 됐다. 현재는 견학을 위해 사전 예약은 필수라고. 주일 예배 때 새 신자 등록을 하고 참석하는 방법도 있다고 하는데, 건축 자체가 전도의 도구가 된 특이한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지난해 국내에 개봉한 영화 ‘안도 타다오’ 포스터
시간의 흔적을 머금은 어머니교회, ‘새문안교회’
한국 장로교의 시발점이 된 새문안교회. 1885년 언더우드 선교사 일행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선교 활동을 시작하고 1887년 10여 명의 성도로 당회를 구성하고 교회를 세운 것이 시작이다. 이후 시간이 흐르며 외형적 형태와 조직은 변했지만, 여전히 130여 년의 역사를 갖고 뿌리 교회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새문안교회 새 성전. 종교 건축 작업에 일가견이 있는 이은석 건축가가 설계를 맡았다 ⓒYoon, Joonhwan
2019년 완공된 광화문 새 성전은 한국 교회의 역사와 새로움을 동시에 담고 있다. 설계를 맡은 이은석 건축가(코마건축사사무소 책임건축가, 경희대 교수)는 곡선과 직선의 결합으로 리드미컬하고 다양한 외관을 구현했다. 다루기 어려운 화강석 재료를 사용해 하늘로 솟아오르는 듯한 곡선을 표현하였고, 곡선 최상단에 십자가 박스를 배치했다. 십자가 반대편 역시 날카로운 곡선으로 마무리해 역동감, 세련미 등을 연출해냈다.
곡선과 직선이 어우러져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마음을 형상화했다 ⓒYoon, Joonhwan
건축가는 내부 곳곳에도 성경적 의미를 담으려고 노력했다. 이 중 다양한 크기와 형태의 창은 인간이 어떠한 모습을 하고 있더라도 깊고 고른 사랑을 주시는 하나님을 의미한다. 본당 십자가는 갈라진 지성소 휘장을 연상시키는 여닫이문 안쪽에 설치되어 있는데, 이는 예수만을 통해 하나님께 이를 수 있다는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표현한 것이다. 건축가는 오랜 역사를 표현하기 위해 옛 교회의 벽면을 고스란히 보존하는 등 건축 중간중간 지난 시간의 흔적을 녹였다. 또 이곳에는 100년이 넘는 교회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시관도 마련되어 있다.
새문안교회 본당 전경 ⓒYoon, Joonhwan
ⓒYoon, Joonhwan
다시, 믿음을 생각하다, ‘청란교회’와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교회’
경기도 양평에 위치한 ‘청란교회’와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교회’는 한 교회다. 2012년 세상에서 가장 작은 교회를 표방하며 푸른 달갈 모양으로 지은 ‘청란교회’가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해 새 예배당을 지어 2017년 부활절에 봉헌하며 두 건물이 나란히 서 있게 되었다.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교회’(왼쪽)과 ‘청란교회’. 출처: 건축공감 유튜브 채널
두 교회는 모두 공간을 독특하게 해석해 기획하고, 창의적인 건축적 시도를 접목했다. 청란교회는 가족 예배를 복원한다는 송길원 담임목사의 철학이 담긴 공간이다. UC버클리 건축과 교수인 앤드류 맥네어Andrew Mcnair가 설계했으며, 미국에서 부품을 만들어 보내면 한국에서 조립하는 방식으로 완성했다. 10명 남짓 수용 가능한 이곳에서는 정규 예배를 드리지 않고, 대신 자신을 돌아보고 하나님의 존재와 섭리를 깨닫는 묵상 공간으로 활용된다.
청란교회. 2017년 500주년 기념교회를 지으며 대대적인 보수작업을 진행했다. 건물 오른쪽으로 보이는 동심원의 잔디밭은 순례길을 형상화한 것이다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교회’의 전체 공간 설계는 시간향건축사사무소 박민철 건축가가 맡았다. 이곳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2층 예배당에 위치한 십자가. 조각가 심재현의 손길을 거쳐 탄생한 이 작품은 예수님의 열두 제자를 열두 마리 물고기로 형상화한 뒤 이를 엮어 십자가로 표현해 눈길을 끈다. 하늘을 향해 난 커다란 유리창을 통해 태양의 움직임에 따라 예수님의 그림자가 드리우는 것이 인상적이다. 이외에도 성전 주변으로는 펼쳐진 잔디에는 각종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으며 미술관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 교회 주변을 거닐며 둘러보는 자연과의 시간이 또 다른 전도자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예수와 열두 제자를 형상화한 십자가. 출처: 건축공감 유튜브 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