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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덴 미디어

에세이
2020-07-06

교회오빠 이관희를 기억하다



‘크리스천의 죽음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라는 질문은 곧 ‘크리스천의 삶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2019년 개봉한 영화 <교회오빠>에서는 희미하게나마 그 답이 보인다. 놀라운 점은 이 영화를 만든 이호경 감독이 논 크리스천이라는 것이다. 비기독교인의 시선으로 바라본 기독교인의 삶과 죽음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의 짧은 에세이를 통해 찬찬히 살펴보길 권한다.




삶과 죽음에 대한 첫 공부는 호스피스에서였다. 강릉에 수녀님들이 만든 한국 최초의 호스피스였는데 원래는 촬영이 금지된 곳이지만, 운 좋게도 수녀님들의 허락을 받아 100일을 그곳에서 보내며 직접 발 안마를 해주던 환자들의 임종에 입회했고 촬영했다. 수녀님들은 세상에 태어나는 것처럼 세상을 떠나는 것도 축복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엄숙한 임종의 순간, 달려온 친지들이 울부짖으면 수녀님들의 손에 끌려 임종실에서 쫓겨나야 했다. 임종은 사랑하는 사람들 속에서 감사와 사랑의 확인을 받으며 삶의 긴 여정을 마치는 따뜻한 시간이어야 했다. 그럼에도 임종의 순간은 지켜보기 힘들었다. 고통 속에서 쉽게 떠나지 못했고 슬픔 속에서 쉽게 보내지 않으려고 했다. 서구 드라마에서 보는 ‘드라이’한 임종 장면은 한국 사회에서 불가능하다. 세상에서 가장 격하고 자학적인 슬픔이 한국인의 임종 현장에 있다. 그래도 남자보다는 여자가, 종교가 없는 사람보다는 종교가 있는 사람의 죽음이, 혹은 죽음에 이르는 과정이 편해 보였다. 어떻게 하면 잘 죽을 수 있는지 수녀님께 물었다.


“잘 죽으려면 잘 살아야 해요. 개떡같이 살아 놓고 잘 죽을 수는 없어요”.


몇 해 후, 다시 죽음의 문제가 내 인생을 덮쳤다. 함께 살던 미혼의 누나가 하루아침에 위암 4기 판정을 받았다. 천성이 낙관적인 누나는 4기의 심각성을 한 귀로 흘렸고, 천성이 비관적인 나는 누나가 당장이라도 떠날 것 같았다. 누나의 병간호도 겸해서 4기 암 환자들의 마지막 깨달음을 담는 다큐멘터리 ‘앎’시리즈를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교회오빠 이관희를 만났다. 딸이 태어나자마자 대장암 4기 환자가 되었고, 상심한 어머니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연이어 부인인 오은주마저 혈액 암 4기 진단을 받은, 21세기에 다시 나타난 욥이었다. 3년간 이관희 부부와 함께 했다. ‘앎’ 시리즈를 제작하면서 늘 실패하는 인터뷰가 있었다. 질문이 우둔해서였다. “당신은 왜 더 살아야 하나요?” 이순신 장군 빼고 누가 이 대답을 하랴 싶었지만, 늘 출연자에게도 나 스스로에게도 잔인하게도 계속 던진 질문이었다. 이관희가 대답했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이 서툴렀기에 하루라도 온전한 하루를 살고 싶어요”.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충격이었다. 이관희는 육체적으로도 수술, 재발, 수술, 재발…. 암 환자가 받을 수 있는 모든 수술과 치료 과정을 거쳤다. 수술로 많은 장기를 잃어야 했고 고통이 뒤따랐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한층 가까이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 앞에서도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아는 하나님 앞에서 ‘온전해지려는’ 삶의 자세를 놓지 않았다. 병세가 악화되고 누워있기도 힘든 상황에서 “고통을 감해 달라는 내 기도를 하나님이 외면하는 것 같다”라고 괴로워하면서도 성경 말씀을 맑은 정신으로 듣고 싶다고 모르핀을 거부했다. 그리고 마침내 임종의 날이 왔다. 아내도, 여동생도, 지인들도 병상을 둘러싸고 이관희의 귀에 대고 사랑한다고, 고맙다고, 천국에서 만나자고 속삭였다. 선한 싸움을 다 마쳤으니 이제는 하나님 곁에서 쉬라고 다독였다. 그리고 마지막 숨을 쉬는 순간이 왔다. 경험상 나는 가장 공격적이고 격한 슬픔이 병실을 흔드는 시간이 오리라 예상했다. 예상과 달리 가족과 지인들이 침대를 둘러싸고 나지막이 찬송가 ‘하늘 가는 밝은 길이’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 노래 중간에 나는 이관희의 마지막 호흡을 확인했다. 믿을 수 없는 평온이었다. 그날은 이관희의 마흔 번째 생일이기도 했다. 태어난 날처럼 축복받으며 세상을 떠났다. 내가 아는 한 가장 불행한 사람이었지만, 내가 본 가장 평온한 죽음이었다. 오래전 수녀님의 말씀을 이관희의 삶을 보고서야 깨달았다. 마지막 날까지 어떻게 사는지가 어떻게 죽는가를 결정한다.

이호경 KBS PD, 영화 감독

1971년 부산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동경대학 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마쳤다. 2000년 KBS에 PD로 입사했다. 2017년 제9회 한국기독언론대상 대상을 받았고, 뉴욕TV&FILM페스티벌 인류관심사부문 금상을 받았다. 가족의 암 발병을 계기로 다큐멘터리 ‘앎’시리즈를 제작했고 그중 KBS스페셜 ‘앎, 교회오빠’는 엄청난 시청률을 기록하며 영화로도 제작이 됐다. 그는 이 영화의 감독을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