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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덴 미디어

에세이
2020-05-27

에덴미디어, 첫 장을 엽니다



최명환 편집장이 쓰는 프롤로그. 삶과 죽음의 문제를 폭넓게 다룰 <에덴미디어>에 대해 소개한다.





기도의 예배당 photo by 김일다


죽음만큼 오랜 시간 인류가 골몰해온 주제가 또 있을까요? 죽음이 철학, 문학, 예술에 가장 빈번히 등장하는 소재라는 사실은 이를 방증합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 죽음은 두려움의 대상으로 간주됩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삶에 대한 미련, 숨이 멎는 순간 겪게 될 극심한 고통, 남겨질 이들에 대한 걱정…. 하지만 무엇보다 우리를 두렵게 하는 것은 역시 무지(無知)가 아닐까 싶습니다. 세상 이치에 통달한 현자조차 죽음은 ‘아직 가지 않은 길’이니까요(여기서 자유로운 존재는 인류 역사상 예수 그리스도뿐일 것입니다). 게다가 많은 문화권에서 죽음은 삶과 유리된, 미지의 영역으로 여겨집니다. 문명이 발달할수록 이런 경향은 강해지죠. <슬픈 불멸주의자>의 공저자인 미국 스키드모어 대학교 셸던 솔로몬Sheldon Solomon 심리학과 교수는 국내 모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죽음과 자본주의의 상관관계에 대해 지적하며 “자본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사회에서는 돈으로 죽음을 회피하려는 움직임도 있다”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즉, 현대 자본사회는 죽음을 삶과 멀찍이 떨어뜨려 놓고 가능한 사람들이 이 주제를 잊고 살아가도록 유도합니다. 죽음을 외면하도록 만드는 것이죠. 하지만 시스템의 이런 전략은 숙명적인 실패로 귀결됩니다. 실존주의 철학자 하이데거의 말처럼 우리는 “죽음을 향한 존재”이니까요. 삶과 죽음 사이의 거리가 멀어질수록 죽음에 대한 공포만 커집니다. 공포는 다시 죽음을 우리의 삶 변방으로 내몰죠. 일종의 악순환입니다.



vanitas by gutzemberg studio




옛 철학가들과 예술가들은 언제나 죽음을 기억하라고 역설했다. 16세기 네덜란드에서 유행한 바니타스vanitas화가 대표적이다. 이들에게 죽음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닌 삶의 덧없음을 알려주는 스승이었다.




<에덴미디어>는 바로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합니다. 삶과 죽음의 자연스러운 공존. 그런데 이것은 에덴낙원이 지향하는 바와 꼭 맞아 떨어지더군요. 에덴낙원을 처음 방문했을 때를 기억합니다. 아직 쌀쌀한 이른 봄이었지만, 가든에서는 일찍이 생명이 움트고 있었습니다. 고인을 모신 봉안단에는 생명의 빛이 스며들고 있었죠. 평화로운 고요함이 녹아 든 이곳에서 죽음의 공포나 상실에 따른 절망감 따위는 느낄 수 없었습니다. 이처럼 공포라는 벽을 넘었을 때 비로소 삶과 죽음이 지척에 놓이게 됩니다. 멀리하지 않는 죽음이 삶의 스승이 된다는 사실을 에덴낙원은 몸소 공간을 통해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에덴미디어>를 기획하며 이런 에덴 낙원의 모습을 닮은 매체를 만들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영원한 삶, 구원을 믿는 크리스천들의 모습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영원한 삶을 믿는다면 죽음은 또 다른 삶으로 넘어가는 하나의 관문일 뿐이고, 삶 역시 그 자체로 즐거운 소풍이자 축복일 테니까요.



부활소망안식처. photo by 김일다


그렇다고 <에덴미디어>가 기독교인의 목소리만 담는 것은 아닙니다. 죽음에 관한 새로운 관점을 폭넓게 제시하는 것이 편집장인 제가 지향하는 목표입니다. 아무쪼록 <에덴미디어>를 통해 소개하는 글들이 죽음에 ‘부당하게’ 가중되어 있던 공포의 무게를 덜어내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또한 우리는 일상 또한 죽음만큼이나 진지하고 적극적으로 다룰 것입니다. 생에 충실하지 못한 채 죽음을 이해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죠. 일상을 풍요롭게 만들어줄 책과 전시, 건축 이야기는 바쁜 생활 속에 잊고 살던 삶의 무게를 되짚어 보게 할 것입니다. <에덴미디어>는 ‘어떻게 잘 살 것인가?’와 ‘어떻게 잘 죽을 것인가?’라는 두 질문을 저글링하듯 다룰 예정입니다. 정해진 답은 없습니다. 그 자체로 삶과 죽음의 과정과 이에 얽힌 여러 생각들을 천천히 탐구하는 기나긴 여정에 가깝습니다. 설령 때로는 미흡하고, 위태롭고, 성글어 보일지라도, 이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이 이 여정에 동참해 주길, 그리하여 삶과 죽음에 관해 돌아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 독자 여러분에게 부끄럽지 않은 미디어를 만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최명환 <에덴 미디어> 편집장

대학에서 시각 디자인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는 미학을 공부했다. 다년간 디자인 전문지 기자로 활동했으며 현재는 칼럼니스트, 브랜드 기획자 등으로 활동 중이다. 2020년 <에덴미디어>의 초대 편집장을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