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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언제나 기쁨의 환희로 가득찬 것은 아니다. 아쉽지만,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그럼에도 우리가 ‘달콤한 인생’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은 일상 속에 알알이 박힌 소중한 추억 때문이 아닐까? 최근 에이치비프레스가 새롭게 선보인 아트북 <웨인 티보 달콤한 풍경>에는 지난한 기다림과 숱한 좌절, 사랑하는 이들과의 이별 속에서도 달콤한 풍경을 떠올리는 100세 예술가의 지혜가 엿보인다.
하트가 그려진 케이크, 왕관을 올린 듯한 크라운 타르트, 각기 다른 모양과 맛을 자랑하며 나란히 늘어선 컵케이크.
오래전 샌프란시스코 출장길에 들렀던 현대미술관SFMOMA에서 독특한 그림 하나를 만났다. 인공조명 아래 놓인 듯 밝고 환하게 빛나는 케이크와 도넛과 막대사탕. 그림 밑에 붙은 설명에는 웨인 티보Wayne Thiebaud라는 이름이 선명히 적혀 있었다. 이후 나는 그의 팬이 되었다.
그의 삶은 수많은 우연으로 가득했다. 카페에서 케이크를 잘라 담아 손님에게 가져다주던 10대 아르바이트생 시절에는 만화가를 동경해 16세에 디즈니 스튜디오의 견습생으로 잠시 일했다. 2차 세계대전 중에는 공군에 입대해 파일럿이 되려 했지만, 카툰을 그린 경험 덕에 우연히 공보부서에 배치되어 포스터와 만화를 그렸다. 제대 후 다소 늦은 나이에 미술대학에 입학했고 졸업 후인 1960년 UC 데이비스 대학의 조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쳤다. 잠시 찾았던 뉴욕은 또 하나의 전환점이었다. 그곳에서 웨인 티보는 윌렘 데쿠닝, 프란츠 클라인 등 당대 대표적인 추상화가들과 친구가 되었고 로버트 라우센버그나 제스퍼 존스 같은 이제 막 주목받기 시작한 팝 아티스트들로부터 자극도 받는다. 예술가라면 결국 다른 사람은 할 수 없는 자신만의 스타일로 자기만의 세상을 표현해야 한다는 결심에 유년 시절 일하며 기억에 남아있는 디저트를 그리기 시작했다. 이때 그의 나이 마흔이었으니 빠른 시작이라 할 수는 없다.
"디저트 그림은 예술이 될 수 없어."
케이크와 파이와 사탕을 그린 그의 작품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냉정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전시를 열었지만, 반응은 미지근했다. 다른 도시라면 혹시 조금 다른 평가를 받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직접 자동차를 몰고 미국을 횡단해 뉴욕 갤러리들의 문을 두드렸지만, 대체로 반응은 비슷했다. 모두가 추상화에 열광하던 시기였으니 대중적인 일러스트레이션처럼 보인 그의 그림은 거절을 당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기회는 언제나 간절한 이에게 찾아오는 법. 마지막으로 연락한 갤러리에서 드디어 관심을 보였다. 놀랍게도 이 전시에 소개한 모든 작품이 팔리며 웨인 티보는 유명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추상의 시대가 저물고 유쾌하고 화려한 팝아트의 시대가 도래하며 그에게 거절을 안겨주었던 '유행'이 아이러니하게도 이번에는 도움이 되었다. 이후 유명 미술관에 그림이 걸리고 컬렉터들이 작품을 사기 위해 줄을 서게 되었다. 2019년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그의 작품 ‘진열장 안의 케이크Encased Cake’가 846만 달러에 거래되기도 했다. 이 정도면 완벽한 성공 아닌가.
"저는 그동안 그림의 소재로 취급받지 못했다고 느껴지는 것들을 찾아내려 합니다."
너무 익숙해서 '저런 것도 예술의 소재가 될 수 있을까?' 싶은 것들을 그리는 웨인 티보는 자신을 구식 화가라고 소개했다.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그저 예쁘기만 한 그림이라면 이 노작가의 그림을 오랫동안 좋아하지 못했을 것이다. 섬세하고 성실한 붓질로 완성한 그의 그림에서는 어딘가 쓸쓸함이 묻어나온다. 역설적이게도 그는 달콤한 그림을 통해 인생이 달콤한 맛으로만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강조한다. 길고 지루한 일상의 쓴맛을 잠시 잊게 해주는 강렬한 단맛. 매일 매 끼니 달콤한 음식으로 가득하다면 디저트가 따로 필요했을까. 삶이 늘 행복하고 안전하기만 하다면 가족과의 식사, 조금씩 초록색 싹을 내미는 동네 화단의 풍경,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옛날 노래를 우리가 그토록 반갑게 느낄 수 있었을까.
"끝없이 늘어진 이 줄이 얼마나 고독할 수 있는지... 이를테면 고독한 공존처럼... 각각의 파이는 저마다 바짝 고조된 고독을 담고 있어서 그렇게 한데 모여 대오를 이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독특하고 특별해 보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아무리 전체주의적이라 해도, 또는 아무리 아름다운 이상향이라 한들,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삶은 그렇게 흉하지만도 아름답지만도 않다는 것을 웨인 티보는 긴 인생을 통해 확인했을 것이다. 사랑했던 아내를 먼저 떠나보냈고 그의 아트 딜러로 일해주던 아들 역시 먼저 세상을 떴다. 하지만 2020년으로 100세를 맞은 웨인 티보는 여전히 캘리포니아주 새크라멘토의 집에서 아침이면 일찍 눈을 떠서 그림을 그리고 운동을 하며 사람들을 만난다.
"지금도 어떤 면에선 언제나 새로 시작한다는 느낌이 들곤 합니다."
내 눈 앞에 펼쳐진 그림 속, 도넛 두 개, 새콤한 레몬 케이크, 네 단으로 쌓아 올린 웨딩 케이크.
가장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하며 살고 있는데 왜 은퇴를 하겠냐고 반문하는 현역 100세의 작가. 그는 여전히 씩씩하고 우아하다.
김은령 <럭셔리> 편집장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영어영문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언론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디자인하우스의 라이프스타일 잡지 <행복이 가득한 집> 기자 및 편집장을 거쳐 현재는 <럭셔리> 편집장 겸 매거진 본부 본부장으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밥보다 책> <Luxury Is> <비즈라이팅> 등이 있으며 <침묵의 봄> <설득의 심리학> <패스트푸드의 제국> <경영과 역사> <나이드는 것의 미덕> 등 30 여 권을 번역했다. 남편과 함께 라이프스타일 사이트 HER Report도 운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