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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13

40세에 배운 알파벳, 탈무드가 기억하는 가장 위대한 출발

이스라엘에서 배운 지혜의 유산


㉙ 40세에 알파벳을 배운 사람


탈무드가 기억하는 가장 늦은 출발


“이 나이에 무슨…” 오늘도 혹시 이런 생각을 하신 적이 있나요? 새로운 것을 배우려는 마음이 올라왔다가도, 스스로 지워버린 적이 있으신가요?


한국 사회 어른들에게서 종종 들리는 말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무언가를 시작하는 일을 두려워합니다. 정확히는, 시작하기도 전에 포기하는 법을 너무 잘 배워서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나이에 무슨…”이라는 말은 다른 말로 “때가 지났다"라는 말과 같습니다. 무언가 시작하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생각이 핑계가 아니라 상식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출처 : unsplash


하지만 이스라엘에서 20여 년간 생활하면서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표현이기도 합니다.

이스라엘의 노년층과 대화하면서 무언가를 도전해 보시는 건 어떤가요? 라고 했을 때, 완곡한 거절의 표현으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이 나이라서…” 혹은 “이 나이에는…”이라고 표현하죠. 이스라엘 복지부에서도 고령층을 ‘에즈라힘 바티킴’(אזרחים ותיקים, 베테랑 시니어들)이라고 표현합니다. 공적 언어에서도 표현의 차이를 두는 것입니다.


내가 혹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고령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그렇다면, 잠시 멈추고 유대인들이 자라면서 많이 들어오는 이 이야기를 들어보면 좋겠습니다.



출처 : unsplash


지금으로부터 대략 2천여 년 전, 이스라엘 땅에는 아키바라는 사람이 살았습니다. 그는 양 떼를 돌보던 목자였고, 매우 가난했고, 40살까지 글자를 하나도 읽지 못했습니다. 유대 사회에서 글을 못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무식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공동체의 신앙, 율법 모두 성경에 적혀 있지만, 그걸 하나도 읽지도 못하고 알지 못한다는 의미였습니다.

이 말은 사회의 중심이 되는 가치를 잊은 채 살아가는 가장 낮은 자리를 의미했습니다. 그래서 아키바는 훗날 자신의 목동 때를 회상하며 이렇게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내가 무지했을 때 나는 말했다. 누가 내게 토라 학자를 데려다 주면 당나귀처럼 물어뜯겠다고.” (Talmud Pesachim 49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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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을 경멸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닿을 수 없는 것에 대한 열등감이 분노로 바뀐 것이었습니다. 이런 그가 어느 날 우물가 곁에 앉아 있을 때, 눈에 가는 모습이 있었습니다. 바위를 보고 있었는데, 파인 홈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단단한 돌 위로 수천 년 동안 물방울이 떨어졌고, 그 작은 물방울들이 결국 바위를 뚫어놓았습니다. 그가 “누가 이 홈을 팠는가?”라고 물었을 때, 곁에 있던 이들이 대답합니다. “매일 떨어지는 물방울이 판 것이요. 욥기에도 있지 않소, ‘물이 돌을 닳게 한다’고.” 그 순간 아키바는 속으로 다짐했습니다.


“부드러운 물이 저 단단한 바위를 팔 수 있다면, 배움의 말들이 살과 피로 이루어진 내 마음을 새기지 못하겠는가.” (Avot DeRabbi Natan 6:2)



출처 : shutterstock


그날 이후, 40세의 목동인 아키바는 목동들과 나란히 앉아 알파벳부터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아이들 사이에 섞여 글을 배우는 중년 남자의 모습은 당시 사회에서는 자연스러운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부끄러움보다 강한 것이 있었습니다. 한번 붙은 배움의 욕구였습니다.



세피라 라이트스톤의 아트    출처 : www.catholic.or.kr


아내인 라헬도 그를 도왔습니다. 원래 부유한 집안의 딸이었던 라헬은 아버지의 반대에도 그와 결혼하였고, 그가 이후 공부하러 떠난 긴 시간 동안 혼자 생계를 이었고, 탈무드에서는 그녀가 머리카락까지 잘라 팔기까지 했다고 합니다(Jerusalem Talmud Sotah 9:15).

수십 년이 흘렀습니다. 마침내 수천 명의 제자를 이끌고 돌아온 아키바 앞에, 남루한 차림의 한 여인이 나타났습니다. 제자들이 그녀를 알아보지 못하고 막아섰습니다. 그 순간 아키바가 말했습니다.


“그녀를 내버려 두어라. 나의 토라 지식도, 너희의 토라 지식도, 사실은 그녀의 것이다.” (Babylonian Talmud Ketubot 63a:1)



라헬의 무덤    출처 : www.catholic.or.kr


곁에서 믿어준 사람 한 명. 그것이 때로는 모든 것을 바꿉니다. 아키바의 이야기는 혼자 이룬 성취가 아니었습니다. 누군가의 눈이 먼저 그 가능성을 보았고, 누군가의 희생이 그 시간을 버텨냈습니다. 우리의 늦은 출발에도 그런 사람이 한 명쯤 있지는 않습니까. 혹은, 우리가 그 한 명이 되어줄 수 있지는 않을까요.


수십 년의 배움 끝에 아키바는 당대 유대 최고의 학자가 되었습니다. 그의 제자는 무려 24,000여 명이 되었고, 오늘날 유대교의 법과 윤리의 기반이 되는 미쉬나 편찬의 토대를 놓은 인물로 기록됩니다. 탈무드는 그를 모세와 비교하기도 했습니다. 40세에 알파벳을 배우기 시작한 목동이 말입니다.



세피라 라이트스톤의 아트    출처 : www.catholic.or.kr


탈무드는 역사 기록이 아닙니다. 수천 년 동안 유대 민족이 자녀들에게 들려주고, 회당에서 낭독하고, 어려운 시절마다 꺼내 읽은 지혜의 문학입니다. 아키바의 이야기가 그 안에서 2천 년을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이 이야기의 힘을 말해줍니다. 민족의 기억 속에 살아남은 이야기에는 그 이유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진실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fact)가 아닌 삶의 진실을 담고 있기 때문이죠.


탈무드가 이야기하는 삶의 진실은 다음과 같습니다:

“배움에는 때가 없다. 시작에는 나이가 없다. 그리고 단단한 바위도 작은 물방울 앞에 결국 길을 내어준다.”


탈무드의 경전    출처 : wikipedia


우리 주변에도 아키바와 같은 분들이 아주 많이 있습니다. 예순이 넘어 그림을 배우기 시작한 분, 일흔에 스마트폰으로 손자에게 영상 보내는 법을 익힌 분, 퇴직 후 처음으로 책을 써보신 분. 이 모든 분들이, 알고 계셨든 모르셨든, 아주 오래된 진리를 몸으로 살아내고 계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아키바의 이야기를 다시 떠올려 보십시오. 그것은 혼자 이룬 성취가 아니었습니다. 누군가의 눈이 먼저 그 가능성을 보았고, 누군가의 희생이 그 긴 시간을 버텨냈습니다. 우리의 늦은 출발에도 그런 사람이 한 명쯤 있지는 않습니까. 혹은, 우리가 누군가에게 그 한 명이 되어줄 수 있지는 않을까요.


“이 나이에 무슨…”이라는 말이 입술 끝에 맴돌 때, 유대인들처럼 잠깐 아키바의 이야기를 떠올려 보시면 어떨까요? 그리고 이렇게 생각을 바꿔보시는 겁니다.


“이 나이에는… 내가 무엇을 시작할 수 있을까. 무엇을 도울 수 있을까.”

이범수 지역전문가

20여 년 동안 이스라엘에 거주하며 이스라엘 Hebrew University of Jerusalem 성서학과를 졸업하고 Bar ilan University에서 이스라엘 학을 전공하였다. 주이 한국 대사관과 팔레스타인 대표사무소에 근무하며 지역 전반에 걸친 현안들을 경험하였고 현재 이스라엘 성서, 역사, 지리, 문화, 언어, 고고학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와 글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