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 속 스토리텔링 읽기 #7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네이버 영화 평점 8.89로 다니엘 콴, 다니엘 쉐이너트 감독과 캡틴 아메리카와 어벤져스 등으로 유명한 루소 형제 감독이 제작에 참여한 작품으로 멀티버스를 소재로 한 영화이다. 일반적인 기승전결 구조를 따르며 복잡한 스토리텔링 속에 익숙한 구조로 재미와 액션을 갖춰 높은 몰입감을 보여주고 있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영화 포스터 출처 : CGV 홈페이지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이하, ‘에에올’)이 3월 12일 열린 9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포함하여 7개 부문을 수상했다. 수상을 떠나 ‘에에올’은 22년 개봉하여 멀티버스라는 소재와 독특한 영상미, SF, 홍콩 액션, 로맨스와 같은 장르물의 기발한 차용, 감동적인 주제 의식으로 이미 많은 화제를 모은 작품이다. 작품 속 이미지의 상징성과 은유 등을 두고 여전히 많은 토론이 활발히 벌어지고 있지만, 이번 글에서는 작품에 사용된 스토리텔링의 분석을 통해 그 의미를 살펴 보고자 한다.
(이하, 스토리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주인공 에벌린 왕은 중국계 이민자로 세탁소를 운영하며 힘겨운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그녀는 자신의 결혼을 반대했던 병든 아버지를 돌봐야 하며, 다정했던 남편 웨이먼드는 그녀와 이혼할 생각을 품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딸 조이와의 갈등이다. 조이는 에벌린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대학을 그만두었고, 현재는 동성애자로 여자친구와 사귀고 있다. 에벌린은 딸의 모든 것이 못마땅하기만 하다.
출처 : YTN
영화의 본격적인 스토리는 에벌린이 세무서에서 탈세 문제로 조사를 받으며 시작된다. 그녀는 남편 웨이먼드의 몸을 빌려 나타난 평행우주 알파 버스 소속 웨이먼드로부터 황당한 이야기를 듣는다. 조부 투바키라는 악당이 알파 버스를 포함한 모든 우주를 파멸하려고 하니 그를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조부 투바키를 막은 유일한 인물은 바로 에벌린뿐이라는 것.
기승전결 구조 도표 출처 : 작가 제공
동양의 서사를 구조화한 기승전결의 구조이건, 서양의 3막 구조이건, 대부분의 스토리는 위 도표의 흐름을 따른다. 이전 글에서 다룬 ABC 구조에서 주인공을 A라고 하고, 주인공이 해결해야 할 문제의 해답을 C라고 해보자. 스토리가 진행됨에 따라 주인공의 여정을 방해하는 장애물 B가 등장한다. 스토리에 따라 장애물은 연속으로 B, B1, B2, B3... 계속해서 등장하며 극의 긴장감을 높인다. B들은 차례대로 난이도가 높은 형태로 나타나기 때문에 위의 곡선의 기울기가 더 가팔라지게 된다.
과거와 현재, 여러 개의 멀티버스를 넘나드는 탓에 ‘에에올’은 언뜻 보기에 복잡한 스토리텔링 구조로 이루어져 있는 것 같지만, 주인공 에블린 앞에 놓이는 장애물들을 순서대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1) 에벌린은 알파 버스 웨이먼드가 설명하는 알파 버스 세계관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야만 한다.
2) 알파 버스에서 자신을 제거하기 위해 온 사람들의 공격을 물리쳐야 한다. 그녀는 다른 멀티버스 세계의 자신과 접속하여 싸움에 필요한 다양한 능력들을 가져와야 한다.
3)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악당 조부 투바키. 놀랍게도 그녀는 자신의 딸 조이의 알파 버스 버전이었다. 에벌린은 조부 투바키를 처단하기 위해 멀티버스에서 몰려온 사람들로부터 딸이자 악당인 조이/조부 투바키를 보호해야 한다. 게다가 그 선봉에 선 사람은 바로 자신의 아버지이다.
4) 조이가 조부 투바키가 된 이유는 알파 버스에서 에벌린 자신이 그녀를 최고의 능력자로 키우기 위해 혹독하게 훈육한 탓이었다. 그로 인해 극단적인 허무주의에 빠져 버린 조부 투바키/조이는 에벌린을 데리고 검은색 베이글로 상징되는 무의 세계로 넘어가려고 한다. 에벌린은 스스로 소멸해버리려는 조이의 자기파괴를 막아야 한다.
5) 딸의 소멸을 막기 위해 멀티버스를 오가며 애쓰던 에벌린은 그녀가 살아보지 못했던 다른 우주에서 이루지 못한 꿈을 성취한 자기 모습을 보며 괴로워하기 시작한다. 급기야 현재의 초라한 자기 모습에 염증을 느끼고 조부 투바키가 되어버린 딸과 같은 허무감에 사로잡힌다. 그녀는 이 허무주의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까? 작가의 관점에서 왜 이와 같은 요소들을 배치했는지 생각해 보자.
이야기를 만드는 작가는 차례로 등장할 장애물 배치에 대해 골몰하면서 크게 두 가지 효과에 대해 고민한다. 첫 번째는 ‘재미있는데, 그다음엔 어떻게 되지?’라는 독자/관객의 기본적인 욕구 충족이다. 그다음은 장애물들을 뛰어넘고 난관을 극복하는 주인공을 통해 감정을 함께 느끼게끔 하고 자신이 생각하는 주제/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한다.
이야기 초반에 에벌린의 현재와 그녀의 가족관계에서 발생한 갈등들은 명확하게 보였다.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우리는 평범한 중년의 동전세탁소 주인이었던 에벌린이 자신이 마주하고 있는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지 지켜본다. 현실에 찌든 에벌린은 다급하고 가족에게 함부로 대한다. 아버지, 딸, 남편 모두와의 관계에서 심각한 갈등을 안고 살아간다. 스토리는 멀티버스 속 악당을 딸 조이의 또 다른 모습으로 설정하여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서 사랑의 잘못된 방식이 관계에 끼칠 수 있음을 암시한다. 또한, 멀티버스라는 설정을 통해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한 후회와 집착이 ‘모든 것이 무의미하다’라는 허무주의에 빠질 수 있음을 경고한다.
누구나 현실에서 만족하지 못하며, 이루지 못한 것들에 대한 후회를 품은 채 살아간다. 그로 인해 생긴 감정의 문제들이 내면의 상처가 되며, 날카로운 무기가 되어 가까운 가족들에게도 피해를 준다.
1)~5)의 과정을 통해 에벌린은 가보지 못한 인생을 경험한다. 그것은 마치 구운몽에서 주인공 성진이 꾸는 꿈과 같다. 에벌린은 멀티버스 여행을 통해 자신의 초라한 현재, 그 시간이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또한, 그동안 닫고 있었던 가족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다. 그리고, ‘다정함’으로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겠다고 결심하기에 이른다.
조이가 빠져들었던 그리고 자신마저 삼킬 뻔했던 극단적 허무주의를 이기는 방법은 실존주의이다. 세상을 밝게 보는 것이다. 상처를 주는 세상 속에서도 세탁소를 운영하고, 세금을 내며 일상의 괴로움을 받아들이고, 가족들과 함께 다정하게 지내는 것. 진부한 메시지지만, 영화는 멀티버스라는 SF적인 세계관을 도입하고, 그 안에서 참신한 방식의 장애물 배치를 통해 감동을 끌어낸다.
출처 : NATE
출처 : CGV 홈페이지
손가락이 핫도그인 멀티버스 세계에선 발가락으로 뺨의 눈물을 닦아주면 된다는 것.
비록 돌로 존재하는 세상이라도, 온 힘을 다해 상대에게 다가갈 것.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