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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16

기억, 존재의 빈 공간을 다시 채우는-<애프터 양> (2022)



한때는 허무맹랑하게 나누던 미래에 관한 이야기들이 이제는 현실에 더 가까워지는 듯하다. 공상과학 영화 속 장면이 눈앞에 실현될 날도 그다지 멀지 않게 느껴지는 요즘. SF 장르는 조만간 우리가 공유해 나가야 할 상식의 변화를 체험하고 사고할 기회를 선사한다. 에디터. 황은비



조금은 새로운 SF 만나기

인간과 안드로이드가 공존하는 근 미래를 그린 <애프터 양>은 대중적인 SF(science fiction)장르로 기대한다면 조금은 당황스러운 영화이다. 아마도 우리가 수많은 SF 블록버스터 작품에서 만난 인간성 상실의 문제나 기계 문명이 초래할 비극 같은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에 익숙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그러기에 로봇과 인간의 치열한 전쟁 같은 서사를 떠올렸다면 오히려 이 영화는 지극히 지루하게, 혹은 정반대로 신선한 느낌으로 다가올 것이다. 나의 경우, 이 영화를 떠올리면 신비롭고 아득한 꿈같은 감각들이 순간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유기물이자 지성을 가진 안드로이드가 전면으로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정서는 오래된 필름사진처럼 다정하고 포근하다. 천연물감으로 염색한 옷을 입는 인물들, 자연 친화적인 그들의 주거환경, 직접 기른 먹거리를 익숙하게 식탁에 올리는 모습과 흘러가는 시간을 천천히 느끼며 차를 우리는 그들의 삶은 태곳적인 순수함마저도 느끼게 한다. 티타늄 합금으로 둘러싸인 서늘한 미래를 상상했던 것이 오히려 구식으로 느껴질 정도이니 말이다.



영화 <애프터양> 공식 포스터. 출처: 네이버영화


영화 속으로

제목인 애프터 양에서 예상 가능하듯, 영화는 안드로이드 ‘양’이 작동을 멈춘 이후의 이야기를 담는다. 이 곳은 ‘세컨드 시블링스’로 불리는 안드로이드가 보편화된 사회이다. 컬쳐 테크노, 테크노 사피엔스로도 불리는 그들은 인간과 같은 유기물로 구성되어 있으면서도 사고와 판단이 프로그램 되어 있는 고기능 지성체이다. 제이크(콜린 패럴)와 카라(조디 터너스미스)는 입양한 중국계 딸 미카(말레아 엠마 찬드로위자야)를 위해 아시아인의 외형을 띈 테크노 사피엔스 ‘양’(저스틴 H.민)을 구입한다. 이는 오빠의 역할을 해주면서 더불어 미카가 자신의 뿌리인 모국의 문화를 배울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넷은 원만한 가족의 형태를 이루며 살아간다. 산책을 하거나 가족사진을 찍고, 가족 댄스대회에 나가는 등 안온한 날들을 보낸다. 그러다 갑자기 양은 작동을 멈추고 일어나지 않는다. 다른 방법을 고민하는 카라와는 달리 제이크는 딸을 위해 어떻게든 양을 고쳐보려고 하지만 뾰족한 방법이 없다. 그러던 중, 양을 수리하려던 기술자로부터 양의 기억장치를 건네받게 되는데, 제이크는 양이 남긴 메모리 속으로 들어가 저장된 기억들을 하나씩 꺼내어 보던 중 리셋 되지 않은 양의 아주 오래된 기억의 조각들을 마주하게 된다.


지식이 아닌 경험을 원하는 안드로이드

인상적인 장면이 하나 있다. 양의 기억들을 살펴보던 제이크는 양과 둘이 차(茶)에 대해 이야기 나누던 기억을 발견한다. 차를 왜 좋아하냐고 묻는 양. 우물쭈물 대답하지 못하는 제이크에게 양은 연이어 차의 맛 때문에 좋아하는 것이냐고 묻는다. 역시나 시원하게 답하지 못하던 제이크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한다. “너는 지금 숲속을 걷고 있어. 땅에는 나뭇잎이 있지. 내리던 비가 멈추자 공기가 아주 축축해. 차에는 이 모든 게 담겼어.” 이 표현을 가만히 듣던 양은 말한다. “제게도 차가 지식이 아니라 진짜 기억이었으면 좋겠어요.” 

이 대사를 듣는 순간 내 마음 깊은 곳에 어떤 작은 불빛이 탁 켜진 느낌이었다. 차에 대한 지식이라면 이미 완벽히 알고 있을 터, 양은 왜 제이크의 말에 귀 기울인 것일까. 그것도 명쾌한 이유도 내어놓지 못하는 그의 뜬구름 잡는 수사修辭를 말이다. 생각해보면 우리의 경험은 시간이 지나 기억이 되고 기억은 정보 즉, 지식이 된다. 경험을 통해 지식과 사유를 향해가는 인간과 달리 지식에서 경험과 기억을 욕망하는 안드로이드라니. 참 희한한 일이다. 더군다나 양은 제이크의 기억을 ‘진짜’ 기억이라고 부르지만, 인간의 기억만큼 시간이 흐를수록 그 불확실성을 확보하는 나약한 것도 없다. 혹시 양의 지식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경험에 의해 감각의 기억을 재구성했기 때문인걸까? 수많은 은유와 상상으로 대체되고 공감을 이끌어내는 인간의 소통방식, 경험과 기억을 수많은 언어로 재구성하고 해체하는 인간의 창조적 영역. 양은 이것을 ‘진짜’라고 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양이 원하던 진짜 기억의 장면은 마치 우리가 생각하는 스냅사진과 닮아있다. 출처: 네이버영화


너의 기억은 우리의 기억이 되어

놀랍게도 진짜 기억을 가지고 싶다는 양의 바람은 이루어진다. 그의 메모리에서 그의 의지로 저장한 기억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더 깊은 장소에는 제이크를 만나기 이전 가족들의 기억도 고스란히 남아있다. 이것은 양이 경험한 진짜 기억이지만, 아쉽게도 양은 자신의 기억을 볼 수 없다. 오히려 소멸할뻔한 그의 기억을 보고 있는 이는 다름 아닌 제이크 이다.

양의 눈으로 포착한 기억들은 이 영화의 표현방식 그 자체가 되어 조각난 기억들이 연결고리 없이 툭툭 던져지는, 마치 스냅사진 같은 느낌을 자아낸다. 사실 영화는 시작할 때 이미 사진의 이미지 포착방식 즉 기억과 기록에 대한 철학적인 접근으로 시작한다. 가족사진을 찍어주는 이는 양이다. 제이크와 카라 미카가 포즈를 취하면 양은 카메라로 구도를 잡는다. 이미 카메라의 눈과 이들을 바라보는 양의 눈은 기억을 포착하는 도구가 되어있다. 찻잔만 덩그러니 남아 있지만 아직 대화의 온기가 남은 텅 빈 테이블, 수풀 사이로 사라지는 누군가의 뒷모습, 커튼이 흩날리는 모습, 그리고 가끔씩 등장하는 거울에 비친 양의 모습까지. 그가 사라진 후 그의 기억은 같은 기억을 가진 가족들로 인해 다시 소생하여 남아있는 그의 빈 공간을 조금씩 채워간다. 너의 기억이 우리의 기억이 되는 순간이다.



영화는 인간다운 것에 대해 다시금 고민하게 한다. 출처: 네이버영화


인간다운 것

<애프터 양>은 안드로이드가 갖고자 했던 진짜 기억에 관한 영화이기도 하지만 때론 안드로이드를 통해 오히려 인간됨에 대한 궁극적인 물음을 역으로 던지기도 한다.

“애벌레에겐 끝이지만 나비에겐 시작이라는 중국 명언이 있어요”

나비 표본을 수집하는 취미를 가진 양이 카라에게 한 말이다. 양이 던진 이 말은 ‘끝이지만 시작’이라는 뜻이 가진 타당성보다는 ‘그런 중국 명언이 있다’ 쪽에 더 무게가 실려 있는 듯하다. 지식을 전달하고자 했던 의도로 들린 달까. 하지만 인간은 오히려 ‘끝이지만 시작’이라는 말에 마음이 동한다. 카라가 되묻는다.

"너도 끝은 시작이라는 말을 믿니? 나는 믿고 싶어.”

“모르겠어요. 그런 믿음은 제 프로그램에 없거든요. 하지만 저 끝에 아무것도 없다고 해도 괜찮아요. 저는 그렇게 프로그래밍 되었나 봐요.”

믿음이라는 말은 인간에게만 허용된 것일까. 시작과 끝, 유와 무, 생성과 소멸. 사실 인간으로써 정답을 알 길이 없는 말들이다. 다가오는 미지의 두려움 앞에 찾게 되는 믿음은, 그러기에 더더욱 가장 ‘인간다운’ 또 ‘인간스러운’ 언어일 것이다.

장다나 영화 칼럼니스트

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에서 영상예술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CJ CGV아트하우스 큐레이터와 복합문화공간 다락스페이스의 프로그래머 역임,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교양학부 외래교수, <부산국제어린이청소년영화제>와 <모두를 위한 기독교영화제> 프로그래머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