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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덴 미디어

컬처
2021-08-23

오감 자극의 결정체 <비욘더로드>



여름의 끝, 내내 뜨거웠던 공기를 가르는 선연한 가을 바람처럼 예술이 주는 자극은 신선하고 깊다. 긴 거리두기에 지친 오감을 건드릴 새로운 전시.


세계적인 레코드 레이블 모왁스(Mo’Wax)의 창립자이자 영국의 유명 일렉트로닉 밴드 엉클(UNKLE)의 제임스 라벨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스티븐 코비&콜린 나이팅게일의 협업 전시 <비욘더로드>가 여의도 더현대 서울 ALT1 갤러리에서 지난 7월 23일 막을 올렸다. 올 가을 대 유행이 예상된다.


국내에도 이머시브 아트를 전문으로 다루는 전문 공간들이 있다. 대중에게 가장 알려진 공간은 제주의 빛의 벙커와 아르떼뮤지엄이다. 고흐나 모네의 작품같이 눈이 휘둥그레지는 환상적인 비주얼과 웅장한 음악, 그리고 현장감 있는 사운드까지 관람객의 눈과 귀를 즐겁게 자극하며 많은 관람객을 끌어 모으고 있지만 이번에 오픈한 이머시브 아트 <비욘더로드>와는 약간 결이 다르다. 가장 큰 차이점은 <비욘더로드>는 촉각과 후각까지 자극한다는 점. 그리고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아티스트와 뮤지션, 영화감독, 심지어 향기 전문가까지 경계를 넘나드는 협업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좌) <비욘더로드> 크리에이터인 스티븐 도비Stephen Dobbie와 콜린 나이팅게일Colin Nightingale.

(우) <비욘더로드>에 입장한 관객은 어둠 속에서 이 글귀와 처음 마주하게 된다.


시각, 청각, 촉각, 후각, 공간지각까지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비욘더로드>는 영국의 유명 극단 펀치드렁크에서 지난 20년간 ‘이머시브 씨어터’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해 온 스티븐 도비와 콜린 나이팅게일의 작품이다. 둘은 몰입형 스토리텔링을 통해 기존의 틀을 깨는 방식으로 아트와 음악을 결합한 작품을 선보여 온 창작자들. 관람객과 예술의 교감을 중요시 여기는 이들의 대표작은 <슬립노모어>다. 국내 언론에도 여러 차례 소개된 뉴욕의 대표 공연으로,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멕베스’를 바탕으로 한 이작품은 무언극으로 관객이 배우를 따라다니며 공연을 관람한다는 매우 신기한 개념의 공연. 객석과 무대의 경계없이 관객을 공연에 참여시키는 형식의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전세계인들에게 큰 인기를 얻고 있다. <비욘더로드>는 바로 이 둘과 뮤지션 제임스 라벨의 협업 작품이다. 제임스 라벨은 클럽문화의 선두주자이자 다채로운 DJ음악을 만들어 온 음악 큐레이터이자 프로듀서. 스티븐과 콜린은 제임스라벨의 앨범 ‘The Road : Part I II’에서 음악을 골라 제임스 라벨에세 <비욘더로드>의 음악을 새롭게 부탁했고 그렇게 비주얼아트와 음악, 영화를 결합한 멀티센서 설치 작품인 <비욘더로드>는 탄생했다.



브라운관의 영상은 대니 보일Danny Boyle의 비디오 작품 ‘Trust’와 제임스 라벨James Lavelle의 사운드 작품 ‘Nowhere to Run/Bandits/Alice in Wonderland’.


몰입형 전시의 형태를 띤 ‘이머시브’라는 장르가 본격적으로 인정받기 전부터 스티븐도비와 콜린나이팅게일은 관람객이 여러 감각을 통해 느낄 수 있도록 다양한 형태의 작품을 만들어 왔다. 이번 전시는 무려 33개의 장소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안에 100여 개의 스피커와 셀 수 없이 많은 조명을 사용했다는 것도 포인트. 수준 높은 몰입형 작품을 구현하기 위해 이들은 환상적인 사운드와 음악, 완성도 있는 영상과 시각효과를 사용해 관객들에게 그야말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 기분을 선사한다. 이 핑크 룸에서는 대니 보일의 TV 드라마를 재해석한 버전의 비디오와 사운드트랙에 참여한 제임스 라벨이 당시 음원에 사용한 요소들을 재해석해 선보인 사운드 작품을 브라운관을 통해 확인할 수 있으니 꼭 일정 시간 이상 머물며 작품을 감상해보자.



레드 룸에는 향수 디자이너 아지 글래서Azzi Glasser의 ‘Build and Destroy’, 그 향을 모티브로 한 작품을 설치했다.


전시에 설치된 작품 옆에는 어떤 작품명도, 설명도 없다. 심지어 동선 안내도 없어 자칫 길을 잃을 수도 있다. 영국에서 온 이 두명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들은 관객에게 “당신의 감정, 당신의 생각이 지시하는 대로 편안히 움직이라”고 “사운드와 조명, 비주얼이 이끄는 이 미지의 세계를 그저 받아들이라”고 말한다. 이 오묘한 분위기의 레드룸은 일명 ‘향기룸’. 알렉산더 맥퀸 등 세계 최고 패션 디자이너, 뷰티 브랜드, 할리우드 배우, 뮤지션을 위해 기발한 향수를 만드는 향수 디자이너 아지 글래서는 <비욘더로드>를 위해 특별히 ‘빌드 앤 디스트로이(build and destroy)’라는 향수를 제작했다. <비욘더로드>라는 전시가 음악, 조명, 작품을 해체하고 재구성해 그 너머의 무언가를 경험하고 상상하게 한다는 의도를 담은 것처럼 향수에서도 향을 구성하는 톱 노트, 미들 노트, 베이스 노트 등 100여 개의 요소를 시각적으로 표현해 관람객을 다시 한번 향기의 향연에 동참하도록 만든다. 최상단에 있는 큰 병이 빌드 앤 디스트로이고, 그 아래 향을 구성하는 요소 하나하나가 들어 있어 구경하는 재미가 남다르다.



현대미술작가 폴리 모건의 까치 작품(왼쪽)과 아이비 존슨의 호랑이 작품. 이번 한국 전시를 위해 특별 제작한 것들이다.


런던 전시와 달리 <비욘더로드> 한국 전시에서는 민화에서 모티브를 얻은 까치와 호랑이 작품이 새로운 볼거리로 등장했다. 주로 박제 작품을 선보이는 작가 폴리 모건Polly Morgan은 한국 전시를 위해 까치를 주제로 한 작품을 새로 제작했다. 까치는 한국에서는 좋은 소식을 전해주는 동물. 영국에서 또한 까치는 보석과 같은 반짝이는 물체를 모으는 새로 통한다고. 코로나19가 만연한 이 시기에 영국에서 한국 관람객을 위해 ‘좋은 소식을 가져왔다’는 의미도 담겨 있고 반짝이는 물체를 모으는 새로 알려진 (영국) 까치의 이미지와 여러 음악을 샘플링하는 뮤지션 제임스 라벨의 이미지도 맞아 떨어진다는 속뜻도 함께 갖췄다. 또한 스티븐과 콜린은 까치에 대해 연구를 하며 한국의 전래동화에서 호랑이를 발견했는데 다수의 한국 민화에 호랑이가 등장하는 것을 확인한 그는 작가 아이비 존슨Ivy Johnson에게 ‘호랑이’작품을 부탁했다고 한다. 전시가 열리는 나라의 상징성을 전시에도 반영하고자 하는 두 크리에이터들의 마음이 작품에 담긴 듯 하다.



(좌) 비디오 작품 ‘The Lost Highway, The Road, Roma’가 상영되고 있는 전시장.

(우) 관객들이 직접 만져보고 앉아볼 수 있는 설치 작품들.


음악을 중심에 두고 체험적인 방식으로 특별한 경험을 선사하는 <비욘더로드>에는 영화, 설치, 조명, 사운드 등 다양한 분야의 유명 아티스트들이 참여해 시각 미술과 사운드, 조명, 향기 등을 융합시켜 초현실적인 공간을 선보이고 있다. 왼쪽의 ‘The Lost Highway, The Road, Roma’라는 이름의 비디오 작업은 아트디렉터 워렌 뒤 프리즈Warren Du Preez와 닉 손튼 존스Nick Thornton Jones, 사진작가 노버트 쇠너Norbert Schoerner, 영화 감독 알폰소 쿠아론Alfonso Cuaron이 함께 한 작품. 그 중에서도 영화 <그래비티>, <해리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 등을 연출한 알폰소 쿠아론 감독은 세계적인 거장으로 제임스 라벨의 음악과 어우러지는 영상 속으로 관객을 초대한다. 영상에 맞춰 사운드가 관객 주변으로 움직이는 듯한 관람경험을 제공하며, 스크린의 양옆에 조명을 설치해 더욱 신비로운 느낌을 자아낸다.



도그 포스터Doug Foster의 미디어 아트 작품 ‘Sanctuary’.


전시장에 마련된 33개의 공간 가장 마지막 전시장에 설치된 작품은 성스럽고도 거룩한 채플 공간이다. ‘신성’을 표현하고 싶은 크리에이티브팀의 스티븐과 콜린의 요청에 따라 영상 아티스트인 도그 포스터는 삶과 죽음의 영속성을 담은 비디오 작품 ‘Sanctuary’를 제작했고, 가슴을 울리는 오묘한 사운드를 배경으로 재생되는 도그 포스터의 마치 우리에게 “너 자신을 발견하라”라고 주문하는 것만 같다. 관람객이 직접 공간을 거닐며 작품을 만지거나 냄새를 맡을 수 있고, 미리 준비한 의자에 앉아 관객이 되었다가 때론 채플 속 기도하는 주인공이 될 수 있는 <비욘더로드>. 이 시대 확장된 이머시브 아트의 예를 보여주는 대표적 전시다.


사진제공. 프레인

김이신 <아트 나우> 편집장

<아트 나우> 편집장. 매일경제신문사 주간지 <시티라이프>,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마담휘가로>를 거쳐 현재 <노블레스> 피쳐 디렉터와 <아트나우> 편집장을 맡고 있다. 국내 아트 컬렉터들에게 현대미술작가 및 글로벌 아트 이슈를 쉽고 친근하게 전달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2018-2019 아티커버리 전문가 패널, 2018-2019 몽블랑 후원자상 노미네이터를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