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산은 일가의 묘를 한데 모아 쓴 산을 뜻합니다. 조상이 묻힌 분묘와 근처에 부속된 임야를 아우르는 말이라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까요? 토지와 묘의 규모가 제법 되기에 선산은 한 개인이 관리하는 것보다 *종중(宗中)과 같이 집안이 함께 유지하고 보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종중은 성(姓)과 본(本) 이 같은 한 겨레붙이의 집안을 뜻합니다.
해마다 돌아오는 명절이면 성묘로 발걸음이 분주해집니다. 오랜만에 모인 친지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은 분명 의미 있고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집안의 후손들은 대부분 선산과 멀리 떨어진 곳에 삽니다. 반면 선산은 문중이 모여 살던 씨족촌 인근에 조성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에 대개 지방에 위치하고 있죠. 성묘를 위해 편도로 5∼6시간은 이동해야 하는 셈입니다.
벌초 문제를 미루다 친척들 사이에 마찰을 빚기도 합니다. 10기가 넘는 묘를 손수 관리하는 부담감 때문이죠. 상황이 이렇다 보니 최근에는 대행업체를 쓰는 일도 많아졌습니다. 또한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는 묘지를 정기적으로 관리해야 하는 짐을 자식에게 지우기 싫다며 자연장이나 화장을 유언으로 남기는 부모님들도 늘어나고 있죠.
우리보다 먼저 저출산과 고령화 그리고 인구감소를 경험하고 있는 일본에서는 ‘묘지 철거’가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2019년 산케이 신문에 따르면 조상이나 가족의 무덤을 없애고 다른 유골과 합장하거나 봉안하는 ‘묘지 철거’와 먼 곳에 있는 무덤을 가까운 곳으로 옮기는 이장이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내가 죽은 뒤 나의 무덤을 돌봐줄 사람이 없다”, “후손들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다”라는 이유 때문이죠. 묘지 관리에 대한 부담을 체감하고 있기 때문인지 생존해 있을 때 미리 가족 및 가까운 이들과 안치될 곳을 마련하려는 움직임도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서울시 설문 조사 당시 ‘죽음을 대비하여 미리 준비하고 있느냐?’라는 질문에 단 24.3%만 ‘그렇다’고 답한 우리나라와는 사뭇 다른 모습인데요, 일본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현대 사회에는 묘지 관리에 대한 부담이 후대로 이어지지 않으면서, 가족들이 부담 없이 그리고 마음 편히 찾아올 수 있는 새로운 장사 문화가 필요합니다.
** 우리나라에서도 분묘를 열어 화장하는 건수가 급증하고 있습니다. 청주시 장사 시설 사업부는 2012년 2천 76건에서 2017년 5천 49건으로 불과 5년 사이 2.5배가 늘어났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선산의 개념은 본디 조상에게 감사를 표하고 가족의 정을 나누자는 뜻으로 유교에서 시작된 장례 문화라고 합니다. 나의 뿌리와 근본을 잊지 않는 태도는 분명 중요하죠. 하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장례 문화 또한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가족들조차 찾지 않아 덩그러니 홀로 남겨진 무덤. 분명 우리가 바라는 풍경은 아닐 것입니다.
“죽은 후라도 너희들에게 부담도 안주고, 우리 가족이 헤어지지 않고 이렇게 나란히 이웃사촌처럼 모여 있으니 아이들이 찾아오기도 좋겠구나. 안심이 되고 행복하다.”
봉안당에 자리를 마련한 뒤 살아계신 모친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는 한 가족의 일화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선산을 대신할 새로운 가족의 화합의 장묘 방법. 그 단서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